Edengol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거듭난 삶 2022. 11. 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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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멸망 2

 

성 경: [21:6-14] 내가 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7)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 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9)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 같이 얻으리라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

11)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1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악행을 인하여 내 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13)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1:6] 내가 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큰 염병에 죽으리라 - 성경에는 '염병'(데베르)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지만,

그 증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대체로 흑사병(pest), 티푸스(typhus), 콜레라(cholera), 천연두(smallpox) 등이

성경에서 염병으로 지칭된 질병들로 짐작된다.

 

이 염병은 구약 시대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던 병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에는,

이 병에 걸리면 거의 죽음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출애굽 후 광야에서 배회하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결과 염병의 형벌을 네 차례나 받았으며,

 

(11:33 고기가 아직 그들의 이빨 사이에 있어 그들이 씹기도 전에 주의 진노가 백성을 향해 타올라 주께서 매우 큰 재앙으로 백성을 치셨으므로;

 

14:37 곧 그 땅에 관하여 나쁘게 보고한 그 사람들이 주 앞에서 재앙으로 말미암아 죽었고;

 

16:46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향로를 취해 제단의 불을 그 안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놓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주에게서 진노가 나갔으므로 재앙이 시작되었느니라, 하니;

 

25:9 그 재앙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더라)

 

예레미야와 에스겔도 불순종에따른

하나님의 징벌로서 임할 염병에 대해 수차례 예언하고 있다.

 

(14: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그들이 번제 헌물과 봉헌물을 바칠지라도 내가 그것들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오히려 칼과 기근과 역병으로 그들을 소멸시키리라, 하시니라;

 

24:10 또 내가 칼과 기근과 역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리니 마침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져 소멸되리라, 하시니라;

 

7:15 밖에는 칼이 있고 안에는 역병과 기근이 있으니 들에 있는 자는 칼에 죽고 도시에 있는 자는 기근과 역병이 삼키리라;

 

12:16 그러나 내가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을 칼과 기근과 역병에서 벗어나게 하여 남겨 두리니 이것은 그들이 이르게 될 이교도들 가운데서 그들이 자기들의 모든 가증한 일을 밝히 알리게 하려 함이라. 내가 주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21:7]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 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시드기야의 그 신하들과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 염병에서 살아남고

또 칼과 기근에서 살아남은 왕들과 신하들

그리고 그밖의 사람들은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신하'에 해당하는 '에베드'는 원래 '', '노예', '하인'을 뜻하나

여기서는 유다왕 시드기야를 보좌했던 근신(近臣)들을 말한다.

왕하25장을 참조하면 이 구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그 역사적 상황을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21: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여기에서

일반 백성 전체에게 주어지는 간략한 서술이 언급되어 있다.

 

내용상 이것은 38:2,3과 유사하다.

 

(38:2-3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도시에 남아 있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역병에 죽되 갈대아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자는 살리니 그가 자기 생명을 탈취물로 얻어서 살리라.

3)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도시가 반드시 바빌론 군대의 왕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이 도시를 취하리라, 하더라)

 

아마 예레미야는 같은 내용의 충고를 수차례 걸쳐 반복했었을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선택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었다.

 

이런 표현은 지혜 문학과 그밖의 다른 문헌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예컨대, 30:15-20에도 이와 유사한 형태가 표현되어 있는데,

그 선택의 주제는 언약에 대한 순종이냐 불순종이냐하는 것이다.

 

한편 본서는 산문과 운문으로 번갈아 가며 표현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산문체이다.

어떤 학자들은 운문만이 예레미야 작품이고

산문체 서술들은 후기 신명기학파 저자들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곤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산문체를

예레미야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주장하는 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예레미야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21:9]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 같이 얻으리라 -

 

여기서 예레미야는 백성들은 향하여 갈대아인들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적에게 항복하라는 이 같은 조언은

그의 정치적 동기를 의심하게끔 만들었고,

감상적 이미지를 띤 정치 지도자들에게 핍박의 명분을 제공할 만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반역자로 여겨지기도 했었다(28).

 

그러나 B.C. 586년 이 민족이 멸망했을 때

그는 이곳에 남아 민족의 갱생을 위해 일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는 결코 개인적 이익을 탐하는 그런 매국노가 아니었던 것이다.

 

 

 

[21: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 예레미야가 주장하는 원리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불의와 불순종으로 인해서 이 민족을 버리셨다는 것이며,

따라서 예루살렘의 멸망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항복할 것을 권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라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미래의 갱생을 위하여 오히려 진일보하는 선택임을 주지시키고자 했다.

 

 

 

[21:11]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 - '유다 왕의 집'이란

유다 왕가(王家)를 가리키며,

그 왕가의 기원을 연 다윗을 대조적으로 상기시키는 말이다(12절 참조).

 

그들의 선조 다윗은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공의롭게 통치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이스라엘을 번영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분열 왕국 시대의 대다수 왕들은

다윗과는 달리 불순종과 배도의 길을 멸망을 자초하였던 것이다.

 

 

 

[21:1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악행을 인하여 내 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 여기서는 왕의 근본적인 임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 서술되고 있는데,

그것은 '공의'(미쉬파트)를 베푸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마다'(랍보케르)란 표현은

낮의 더위를 피해 아침 시간에 성문에서 열리던 소송 사건을 염두에 둔 표현인 것 같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왕들의 주요 임무들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정의를 관장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왕이란 정의의 수호자였던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이런 의무가 더욱 강조되었으며,

솔로몬은 하나님께 다른 그 무엇보다도 선과 악을 분별할

지혜를 주실 것을 간구하였다.

 

(왕상 3:9 그러므로 주의 백성을 재판하도록 주의 종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사 내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같이 큰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라).

 

 

 

[21:13]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 KJV골짜기와 평야의 바위에 사는 거주민아라고 기록하여 요새로서의 예루살렘의 지형적 이점을 시각적으로 잘 드러내었다.

유다 백성은 지리적 이점 때문에 예루살렘의 난공불락의 요새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비웃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다분히 조소적인 표현으로서 그들의 자만을 꼬집고 있다.

 

한편 본절의 '너희'2인칭 단수 여성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도시나 성들은 흔히 그곳 주민들의 '어미'로 표현되었으며

그 주변의 마을들은 '딸들'로 불리었다.

 

(왕하 19:21 주가 그에 관하여 한 말이 이러하니라. 처녀 시온의 딸이 너를 멸시하고 너를 비웃고 조롱하였으며 예루살렘의 딸이 너를 향해 자기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37:22 주가 그에 관하여 한 말이 이러하니라. 처녀 곧 시온의 딸이 너를 멸시하고 너를 비웃고 조롱하였으며 예루살렘의 딸이 너를 향해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1: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70인역(LXX)에는 본절의 첫 행이 누락되어 있다.

그러나 문맥상 이 부분을 포함시키는 것이 더 적절하다.

앞 구절과는 달리 여기서 '너희'2인칭 남성 복수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예루살렘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편 '수풀'(야아르)이란 명사에 대해 어떤 주석가들은

이 말이 왕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설명하는 근거로서 왕상7:2에 있는

'레바논 나무로 궁(레바논 수풀 궁)을 지었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아마 이 궁을 건축하는 데는 엄청난 백향목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말을 예루살렘 혹은 유다의 온 땅을 암시하는

보다 폭넓은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수풀을 불에 사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이미지 중의 하나이다.(D.R. Jones)

 

(9:18 사악함이 불같이 타올라 찔레와 가시를 삼키고 빽빽한 숲에 불을 붙이매 그것들이 연기가 올라가는 것 같이 올라가리라;

 

10:18 그의 숲의 영광과 열매를 많이 내는 그의 들의 영광을 소멸시키되 혼과 몸 둘 다를 소멸시키리니 그들은 마치 깃발을 드는 자가 힘을 잃는 때와 같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