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보라 나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거듭난 삶 2022. 11. 1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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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 3

 

성 경: [23:18-23]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

19) 보라 나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20)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21)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2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23:18]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하여 - 이 구절은

누구도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한 자가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이 여호와의 회의를 알수 있는 자란

아무도 없다는 욥 15:8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수사 의문문이 아니며

예레미야 자신은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평화를 외치는 자의 말이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음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 좋겠다(Bright, Nicholson).

 

그리고 '여호와의 회의'(베모드 야훼)

여기서는 여호와께서 당신의 참된 종들과 깊은 교제를 통해

진리를 계시해주시는 것과 연관지어 이해되어야 하겠다(Feinberg).

 

(3:7 분명히 주 하나님은 자신의 은밀한 일을 자신의 종 대언자들에게 계시하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23:19] 보라 나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 '회리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악취를 풍기는 사막의 열풍을 말하는데,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권능과 심판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종종 등장한다.

 

(58:9 너희 솥들이 미처 가시나무를 느끼기 전에 그분께서 회오리바람같이 그들을 제거하시리니 곧 살아 있는 자들과 자신의 진노 가운데 있는 자들을 제거하시리라).

 

한편 본절과 다음절은 약간의 변형을 제외하고는 30:23, 24의 내용과 동일하다.

 

(30:23-24 보라, 주의 회오리바람 곧 계속 부는 회오리바람이 격노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그것이 사악한 자의 머리 위에 고통과 함께 임하리라.

24) 주의 맹렬한 분노는 그가 자기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 돌아서지 아니하리니 마지막 날들에 너희가 그것을 깊이 생각하리라)

 

이런 이유로 해서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후대에 삽입된 내용이라고 주장하나,

문맥상 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선지자가 같은 내용을 다른 상황에 적용하여

같은 말을 반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섣부르게 삽입론을 펴서는 안 될 것이다.

 

 

 

[23:20]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

 

여기서 우리는 잠시 예레미야가 자기 고향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큰 박해를 받았으며 또한 그의 메시지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상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또 납득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내버린다는 것에 동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Nicholson).

 

그러나 본절은 범죄에 따른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편, 말일에(베아하리트 하야밈)란 말은

직역하면 '종말의 때에'란 뜻으로서

메시야 시대에 관한 서술로도 쓰이나

여기서는 단순히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때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Bright, Feinberg).

 

 

 

[23:21]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받아들인 일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지어낸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며,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빌미로 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채웠던 것이다.

 

이를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감각이 없는 반면에

자신의 권위나 욕심을 채우려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여 아전인수격으로 적용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23: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

 

참된 선지자의 표적들 중의 하나가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세움받은 백성은

그에 합당하게 거룩함과 의로움의 결실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참된 선지자의 주된 사역은

그들이 죄악에 빠져있을 때 그것을 꿰뚫어 보고

그들을 하여금 죄악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이다(Nicholson).

 

 

 

[23:2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먼 데 하나님은 아니냐 -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행동하지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우리들의 모든 행위를 다 보고 계시다.

 

하나님은 초월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내재해 계시고

우리들의 머리털까지 세시고 계시며,

새들을 먹이시고 식물에게 옷을 입히신다(Nicholson, Clarke).

 

 

 

[23: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 본절의 질문은

앞의 내용과 연결되고 있는 수사 의문문의 형식으로서

그 대답은 부정문을 유도하고 있다.

 

요나가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갔던 일이 있으나,

하나님은 지역 신이 아니신 고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짓 선지자들이 비록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으며

그들의 모든 행위는 전부 하나님께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23:25]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몽사를 얻었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람''꿈꾸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종종 꿈이나 환상을 통해 전달되었다.

 

*참조 : (37, 41;

 

12:6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제 내 말들을 들으라. 너희 가운데 대언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려니와;

 

삼상 28:6 사울이 주께 여쭈었으나 주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대언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라;

 

2:7 그들이 다시 응답하여 이르되, 왕께서는 그 꿈을 자신의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우리가 그것의 해석을 보여 드리겠나이다, 하매;

 

2:28 그 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리라;

 

* 참조 : (1:7-6:8).

 

본절의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이 받은 계시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꿈꾼 사실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자신들의 편익을 취하기 위해 꾸며낸 거짓말일 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이비(似而非)나 이단은

많은 부분에서 참종교와 외형적인 면에서 유사한 면을 보이나,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인하고 그 말씀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가감한다는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23:26]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 히브리 원문의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구절이다.

 

혹자는 '언제까지'에 해당하는 '아드 마타'

'몽사를 얻었다'(25)에 해당하는 '할라메티'의 오기(誤記)로 보거나(Duhm),

 

'이 마음을 품겠느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예쉬 벧레브'

''27절 서두(히브리어 원문상의)''에 연결시키거나(Rudolf)

 

혹은 '하예쉬 벧레브''하야슈브 레브'로 고쳐 읽기도 한다(Brockington).

 

그러나 굳이 히브리어 원문을 수정하지 않더라도

본절의 의미는 비교적 명확하게 이해된다.

 

즉 거짓 선지자들은 나름대로 자기 예언의 근거와 기원이

하나님께 있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조만간 그 거짓됨이 드러나고 만다는 말씀이다.

 

 

 

[23:27]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가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

 

여기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끼치는 해악(害惡)

우상숭배로 말미암은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거론된다.

 

한편 내 이름이란 단순한 칭호 이상의 의미,

곧 하나님의 인격과 본성을 함축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