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된 두루마리
성 경: [렘 36:1-8]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년에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3) 유다 족속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한 모든 재앙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킬듯 하니라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사하리라
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5) 예레미야가 바룩을 명하여 가로되 나는 감금을 당한지라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은즉
6) 너는 들어가서 나의 구전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집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7)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날듯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와 분이 크니라
8)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무릇 선지자 예레미야의 자기에게 명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집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하니라.
[렘 36: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년에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 여호야김 사 년에 - '여호야김 사 년'은 B.C. 605년에 해당된다.
B.C. 605년은 고대 근동 지역의 국제적 상황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 해에 바벨론 군대가
유프라테스 강변 갈그미에서 애굽 군대를 격파시킴으로써,
명실 공히 근동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굽 군대를 격파하고 난 다음에 바벨론은
곧이어 수리아- 팔레스틴 지역으로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과 예레미야의 신탁을 담은 두루마리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두루마리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도구가 바벨론이 될 것이며,
그리고 여태까지 선포해왔던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렘 36:2]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 이 '두루마리 책'이란 표현은
본절 외에 4절과 시40:7 ; 겔 2:9에만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책으로 만들어진 긴 두루마리인지,
아니면 기록할 용지로서의 두루마리인지는 확실치 않다(Bright).
'두루마리'(메길라)는 '굴리다'는 뜻의 '갈랄'에서 유래한 말이다.
고대에는 오늘처럼 종이 제조 기술이나 제본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까닭에
주로 갈대로 만든 파피루스나 동물의 가죽을 대신 사용했으며,
그것을 여러 장 연결한 후에 끝 부분에 굴림대가 있는 막대기를 부착시켜
양편에서 말 수 있도록 만들었다.
탈무드(Talmud)에 따르면,
공적 집회에서 낭독용으로 사용되는 토라 사본은
정결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두루마리에 기록했다 한다.
바룩이 사용했던 두루마리는 파피루스였으리라 짐작된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이 따르고 있는 맛소라 텍스트는
본절에서 이스라엘 이라고 읽고 있지만,
70인역(LXX)은 이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그러나 문맥상, 맛소라를 따르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왜냐하면 뒤에 '열방'이란 말이 있어서,
하나의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함께 표현할 때는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이란 순서를 취하였다.
아무튼 여기서 '열방'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 메시지가 유다를 넘어서 보다 넓은 관점에서 선포된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한 흥미로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그것은 예레미야가 왜 두루마리에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말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상황을 고려해서 살펴보면,
그는 제사장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방법만이 백성들과의 교신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5절).
또 다른 요인을 든다면,
바벨론 군대가 금방이라도 이 민족을 멸망시킬 것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흔히 있던 바와 같이 구전(口傳)으로 전달하면
전쟁의 혼란 속에서 곧 잊혀질 염려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가 계속 살아 있고 또 사회적 안정이 보장되어 있었다면
백성들은 언제라도 선지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 당시로서는 예레미야의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었고
민족 전체가 부패한 상황에서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는 분위기도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두루마리에 기록으로 남겨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B.C. 622년에 요시야 당시 성전에서 두루마리 책이
발견된 것 역시 하나의 선례가 되었을 수도 있다.
[렘 36:3] 유다 족속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한 모든 재앙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킬듯 하니라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사하리라
▶ 유다 족속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한 모든 재앙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킬듯 하니라 -
이 예언의 일차적 관심은 '유다 족속'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를 근거로 해서
2절의 '이스라엘'이란 말을
70인역(LXX)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읽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특정 대상으로 언급하고 있는 단락에서도
유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상의 주장이 반드시 옳지는 않음을 말해 준다.
(3:6-11 요시야 왕 시대에 주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타락한 이스라엘이 행한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녀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창녀 짓을 행하였도다.
7) 그녀가 이 모든 일을 행한 뒤에 내가 말하기를,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하였으나 그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녀의 배신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8) 타락한 이스라엘이 이 모든 이유로 인해 간음을 행하였을 때에 내가 그녀를 버리고 그녀에게 이혼 증서를 주었으나 그럼에도 그녀의 배신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가서 또한 창녀 짓 하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9) 그녀가 자기의 행음을 가볍게 여겼으므로 돌과 나무줄기와 간음하여 그 땅을 더럽혔거늘
10)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배신한 자매 유다가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단지 거짓으로 돌아왔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11) 또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타락한 이스라엘은 배신한 유다보다 자기를 더 의롭다 하였느니라).
아무튼 하나님은 바로 이 시점까지도 유다의 회개를 기다리고 계셨다.
회개의 기초는 여기서 지적되고 있는 바와같이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이었다.
(7절 어쩌면 그들이 주 앞에서 자기들의 간구를 드리고 각 사람이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라. 주께서 이 백성을 향하여 선포하신 분노와 격노가 크니라, 하매;
26:3 만일 그들이 귀를 기울이고 각 사람이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그들의 악한 행위로 인하여 내가 그들에게 행하려고 작정하는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리라).
[렘 36: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
예레미야의 개인 비서 혹은 서기 역할을 하였던 '바룩'은
유다의 명문(名門) 집안 출신으로 짐작된다.
(51:59 유다 왕 시드기야의 통치 제사년에 마아세야의 손자요, 네리야의 아들인 스라야가 그 왕과 함께 바빌론으로 갈 때에 대언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명령한 말이라. 이 스라야는 평온한 통치자더라).
한편 바룩의 대필(代筆)에 관해, 우리는
하나님이 바룩에게 영감을 주신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을 때 예레미야가 영감을 받았을 뿐이며,
바룩은 그 영감받은 말씀을 단순히 받아적었다고 보아야 한다(Feinberg).
[렘 36:5] 예레미야가 바룩을 명하여 가로되 나는 감금을 당한지라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은즉
▶ 감금을 당한지라 - 여기 해당되는 히브리어의 기본형 '아차르'는
종종 유체적 감금 상태를 말할 때도 사용되었다.
(33:1 예레미야가 아직 감옥 뜰에 갇혀 있을 때에 또 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두 번째 임하니라. 이르시되;
39:15 이제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그러나 이는 '에워싸다', '제지하다', '억제하다' 등과 같이 여러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본문에서도 문자적으로 감옥에 갇힌 상태를 말하지 않고,
여호야김과 방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성전 출입이 금지되었음을 뜻하는 것 같다(Bright, Nicholson).
왜냐하면 19, 26절에서처럼,
예레미야와 바룩은 스스로 몸을 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렘 36:6] 너는 들어가서 나의 구전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집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
본절에 언급된고 있는 금식일은
어떤 고정된 절기에 따라 소집된 것이 아니고
특정한 사안이나 위기가 닥쳐서 소집된 것이었을 것이다(Bright).
예레미야는 금식일에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 것을 계산했으며,
이때 두루마리를 읽게 함으로써 큰 효과를 거두려고 하였다(Nicholson).
그러나 여기서 지적되었던 바와 같이
금식일로 소집되어야 했던 긴급한 안건이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것은 바벨론 군대가 팔레스틴 평원에 도착한 것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렘 36:7]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날듯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와 분이 크니라 -
금식의 날에 백성들은 여호와께 현재의 고통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것을 탄원할 것이다.
본절에서는 예레미야가 자기 백성의 회개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3절).
여호와께서 엄청난 분노로 예고하셨던 그 심판을 돌려 놓으려면
회개가 필수 불가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백성은 돌이킬 줄 몰랐다.
[렘 36:8]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무릇 선지자 예레미야의 자기에게 명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집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하니라.
▶ 바룩이 무릇 선지자 예레미야의 자기에게 명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집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하니라 -
비슷한 내용이 10절에 언급되고 있다.
어떤 학자는 본절이 후대의 필사자들에 의해 삽입된
해석이나 설명일 것으로 보고 있으나(Bright),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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