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거듭난 삶 2023. 10. 2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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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집사 임명

 

성 경: [6:1-7]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 '제자'는 본서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다.

 

이 단어는 공관복음서에서 160, 요한복음서에서 78, 본서에서 28회 사용되고 있는데

예수의 12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람들까지 지칭한다.

 

(14: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전장에서 유대인들의 탄압에 대한 가말리엘의 변호와,

 

(5:34-39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채찍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증거한 사도들의 담대한 전도는 제자들의 수를

급증시켰다.

 

렌스키(Lenski)에 따르면 이때의 신자의 수는 약20,000-25,000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불과 1,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 정도로 증가되었다는 것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헬라파 유대인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 -

 

'히브리파 사람'이란 이스라엘 땅에서 출생, 성장한 유대인들을 가리키며,

'헬라파 유대인'이란 각처에서 흩어져 살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디아스포라(Diaspora) 출신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히브리파 사람'은 약간의 헬라어(Greek)를 알고 있으면서 셈어(Semitic language)

주로 사용했다.

 

당시 거의 모든 유대인들은 적어도 약간의 헬라어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헬라어는 지중해 동쪽 지방의 국제 통용어(lingua franca)였기 때문이다.

 

이 히브리의 용어는 오히려 아람어(Aramaic)였다고 봄이 더 정확하다.

 

반면 '헬라파 유대인'은 아람어를 전혀 모르거나 약간 알고 있으면서 주로 헬라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유대인으로서 그들의 상용어(常用語)인 헬라어로 예배드리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러한 습관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에도 지속되었다.

이들은 히브리파 사람들보다는 혼합주의적 영향력에 더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히브리파 사람들은 헬라파 사람들보다 선민적(選民的) 배타의 식이 더 강했다.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 당시 유대교내의 빈민 구제 사업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일정한 지역 내의 거주민들 중 극빈한 사람들에게 매주 금요일마다

열 네끼에 해당하는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방랑하는 낯선 빈민들에게 사발에다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기독교 공동체의 구제 방식은 위의 두 가지와는 또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구제 대상이 공동체 내의 지역민들인 동시에 구제 시기는 또 매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구제를 받은 사실은 이미 유대교 사회로부터

소외당했음을 시사한다. (Haenchen).

 

한편 헬라파 유대인들이 원망하게 된 구체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본문에 나와 있지 않다.

 

그들은 매일 매일의 식량 배급이나 생필품 지급에서 헬라파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보다 푸대접을 받거나 더러는 누락이 되어 불만을 표했던 것 같다.

 

따라서 이들의 원성이 교회 안에서 높아감에 따라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에 나서게 되었다.

 

(2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더욱이 헬라파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상용어가 서로 간에 달랐으므로 자연히

따로 모이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며 이런 와중에서 서로는 편견과 불평들을 토로했을 것이다.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 당시 사도들은 교회의 중심인물로서

기독교 공동체를 지도하고 감독했었다.

 

이들은 교회 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임의대로 처리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의 회의를

소집(召集)하였고 그 회의에서 논의된 결과에 따라 그 문제를 처리하였다.

 

이 회의가 굳이 예수의 수석 제자인 베드로에 의해서 주재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반드시 남자들로만 구성되거나 연령 제한이 있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회의는 사도들 독단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사도들은 단지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 예수께서 열 두 사도에게 분부한 우선적인 사명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그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는 것이었다(28:19-20).

 

그런데 교회 내에 구제 사업을 비롯한 행정적 일들이 날로 늘어감에 따라 사도들은

정작 주력해야 할 복음 증거 사역에 자연히 소홀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따라서 사도들은 그들이 맡은 사명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교회 안의 행정 처리와

말씀 전하는 일을 이원화 시킬 것을 제안한다.

 

공궤를 일삼는 것 - '일삼는'의 헬라어 '디아코네인'은 전치사 '디아''먼지'

뜻하는 '코니스'의 합성어로서

 

'먼지가 일어날 만큼 분주히 움직이다', '심히 일하다', '봉사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식사나 기타의 일 등에서 섬기는 것'(12:26)을 나타낼 때와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집사로서 봉사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딤전 3: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영어의 집사에 해당하는 단어 deacon은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1절의 '구제'(디아코니아)라는 말도 본 단어와 동일한 어원에서 유래되어

집사들이 교회 안에서 주로 맡은 일들이 무엇인가를 시사한다.

 

'공궤''식탁'이나 '환전상의 탁자'를 의미하는데 특별히 교회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식량과 생활용품 등을 나누어 주는 등의 구제 사업을 가리킨다.

 

여기서 사도들이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 하였다고 해서

 

'공궤'가 기도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보다 저급(低級)한 일이라고 단정해 버려서는 안된다.

 

이는 다만 열 두 사도에게 있어 '공궤' 하는 일은 그들이 주께로 부터

부름받은 일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교회 안의 각 구성원은 저마다 주께로부터 특별히 부름받은 사명이 있는 것이다.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 집사 일을 맡아 볼 사람들의 자격으로서

제일 먼저 거론된 것은 '성령의 충만함'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복음 전파와 교회 확장의 주요 동인(動因)이었기 때문이다.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10: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11: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따라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께서 부여하신 은사와 함께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바쳐 하나님의 일을 올바로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혜의 충만함'은 성령충만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혜의 충만함은 곧 성령 충만의 증거도 되기 때문이다.

이 지혜는 행정 및 사무 처리에 필요한 지혜를 뜻할 수도 있겠으나 보다 포괄적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실천적인 지혜들까지 포함한다.

 

여기서 '칭찬 듣는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평판이 좋은 사람',

'증명된 사람'이다.

 

즉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맡을 사람은 성령 충만한 결과로 나타나는

신앙 인격 또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다.

 

한편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선택하는 본문의 과정은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여호수아를 택하여 세우는 과정과 평행이 된다.

 

(27:16-20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곱을 택하라 - 집사의 수효를 굳이 일곱으로 정한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나 다음 세 가지가 비교적 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1) 유대인들에게 있어 7이라는 수는 성수(聖數) 또는 완전수로 여겨졌으므로

그들이 임의로 특정한 수를 택해야 할 경우에는 대개 7을 택하였다.

 

그래서 본문의 경우에도 그들의 생활 관례에 따라 7명의 집사를 선택했을 것이다.

 

(2) 유대의 관습상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7인 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관습을 좇은 것같다.

 

(3) 유대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지역 책임자들이 7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때

예루살렘 교회는 이러한 유대의 제도를 따른 것 같다.

 

어떠한 견해를 따르든 본 구절을 해석하는 데는 별무리가 없으며 그 문제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7명 정도면 구제 사업을 담당하며 교회 내의 사무 및

행정적인 문제를 처리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이러한 사례를 본받아 어떤 교회에서는 항상 일곱 집사만을

선택하여 세우려 하지만 이는 본문을 잘못 해석하여 적용한 경우이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에서 집사 수를 일곱으로 고정시켜 제도화한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몸된 교회를 위한 일꾼으로 또 사도들의 동역자(同役者)로 선출된

사람들이지 사도들의 보조자나 종 또는 심부름꾼으로 선출된 사람들이 아니다.

 

 

 

[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 여기서 평신도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의 기본적인 사역의 방향이 제시된다.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 안의 사무 행정 등의 문제를 담당한다면 목회자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말씀전하는 사명을 특별히 부여하심과 함께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늘 기도 할 것을 말씀하셨고 기도의 모형을 제시하시며 기도를 가르치셨다.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여기서 '기도'는 때때로 기도라는 의미 외에 '기도회' 같은 기독교 공동체의

'공동 예배'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본문의 상황에서도 이 같은 의미로 사용됐는지는 모르지만, 사도들이 기도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이 성도들에게 비쳤다면 당연히 성도들도 기도에 열심을

내었을 것이고 이로 인하여 기도회(祈禱會)같은 모임이 자주 형성되었을 것이다.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 - 본 절에서 제시된 일곱 사람의 이름은 모두 헬라명이다.

 

이 사실만 가지고 이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당시 팔레스틴 내에도 헬라식 이름을 가진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자 누가가 여기서 헬라식 이름만을 기재한 사실과 이들을 뽑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이었다는 점 등을 본다면 이들은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스데반과 빌립'이 첫 번째 언급된 것은 뒤이어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즉 스데반과 빌립은 사도들처럼 훌륭한 사역을 감당한 전도자들이다.

 

한편 본 구절의 '빌립'은 예수의 제자 빌립과는 다른 인물이다.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21: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안디옥 사람 니골라 -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은 본 구절의 '니골라'가 계 2:6-15

'니골라당'을 세운 사람과 이름이 같다 하여 양자를 동일 인물로 보아 본 구절의

니골라를 배교자로서 간주한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일곱 사람들 중 유독 니골라에게만 특별히 상세한 소개를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본다.(Gieseler, de Wette,Ewald).

그러나 그 같은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나 자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안수하니라 - 여기서 사도들이 일곱 집사에게 안수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부여한 것은

27:15-23에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를 함으로써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서

지명한 이야기와 평행하는 것 같다.

 

(27:15-23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가로되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21)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22)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23)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 하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 교회를 질적으로 계속 자라게 하시며 또 양적으로도 믿는 자의 수를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의 한 예로 많은 제사장의 무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실이 언급되는데 이는 예루살렘 성 내에서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으며 유대교 내에서는 치욕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기조차 했을 것이다.

 

예레미야스(Jeremias)에 따르면 예수 당시의 유대인 일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18,000명가량이었고 이중 8,000명 정도가 제사장들이었다고 한다.

 

이 제사장들 이 제의(祭儀) 기능을 수행했던 기간은 3대 명절의 순례 축제 기간과

2주간 정도였으며 나머지 연 10-11개월 동안은 고정된 수입이 없었던 관계로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직업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과 대제사장들 사이의 사회적인 신분격차는 대단히 컸으며 대제사장들은

항상 제사장들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떼곤 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별다른 소득이 없는

제사장들은 굶어죽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제사장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따라서 당시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생활과 또한 유대교 자체의

부패상으로 인해서 많은 회의(懷疑)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생명력 있는 기독교 신앙이 많은 호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