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거듭난 삶 2023. 11. 2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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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 가()의 성령 강림 5

 

성 경: [10:34-43]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침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10: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베드로가 입을 열어 - 빌립이 이방인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할 때

 

(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또는 산상 설교에서 예수가 설교를 시작할 때처럼

 

(5: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입을 열어'라는 표현은 곧이어 언급될 이야기의 권위와 신중함을 암시해 준다. 여기서는 이방인에 대한 구원을 선언하는 중대한 선언을 나타내기 위해 이 표현이 사용되었다.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 하나님은 사람의 외적인 조건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신 10:17의 인용구로 짐작된다.

 

(10: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 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여기서 언급된 '외모'는 유대인들이 지키는 율법과 종교적 제의와 관습들을 가리키는 말이며 형식적인 경건주의를 상징한다. 더 나아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외형적 구분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10: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 - 이제는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선민의식과 같은 배타적 우월감이 하나님 앞에 용납되지 않는다. 여기서 구원받을 대상의 범위가 온 세상 사람으로 확대된다.

 

한편 본 절의 표현은 구약적인 표현인데 이를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예수를 믿고 영접한 자'로 해석할 수 있다.

 

깨달았도다 - 헬라어 본문에서 이 동사는 현재형으로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에게 보여진 환상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하여 이제 분명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10: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 베드로는 창조주 하나님에게 사용하던 칭호를 예수에게 사용하면서 이제 구원의 유일한 길로서 예수를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만유'(萬有)는 헬라어로 중성과 남성 모두에 해당되어 '세계 만물' 또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혹자는 '만유''모든 사람', '만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 베드로는 평화를 예수가 전한 복음의 핵심으로 본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뜻한다(Haenchen).

 

과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심판하는 자와 죄인의 관계였으므로 화해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해의 관계로 바뀌게 된 것이다.

 

(5:10-11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또한 이 평화는 사람간의 평화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동안 그 둘을 가로 막았던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민족적 편견과 편애가 없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은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

 

 

 

[10:37] 곧 요한이 그 침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요한이 그 침례를 반포한 후에 - 예수가 선포했던 평화의 복음은 요한의 침례에서 부터 출반된 것임을 시사한다. 여기서 언급된 '그 침례'는 메시야이신 예수를 예비하는 것이다.

 

요한의 침례는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앞서 침례요한을 언급했던 것이다.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 본 구절이 예수의 사역이 시작된 지역에 대한 설명인지 아니면 예수의 출생에 대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36절에서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란 표현이 사용된 점으로 비추어 보아 본 구절은 예수의 사역과 관련된 것으로 짐작된다.

 

두루 전파된 그것 - '전파된 그것''되어진 말씀'으로 직역될 수 있다. 이는 이미 예수를 통해 온 지역에 전파된 말씀으로 앞에서 언급된 '화평의 복음'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여기서는 비록 '말씀'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이 말씀 속에는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 외에 행하신 표적도 포함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를 통해 나타난 계시는 말씀에 의한 것과 행위에 의한 것이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 누가는 '나사렛'이라는 지명과 함께 예수를 언급하여 그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실을 강조했다. 한편 누가는 역사적 예수가 수행하신 모든 언행에 대한 권위를 언급하려는 의도로 본문을 서술했다.

 

즉 앞절에서 언급한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언행과 일치하는 것이고 나사렛 예수의 언행은 하나님의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가 행했던 모든 언행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예수의 모든 가르침과 행위는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그 정당성이 인정받게 됨을 보여준다.

 

그래서 누가는 본 절 마지막에 '이는 하나님의 함께 하셨음이라'고 덧붙여 놓았다.

 

착한 일을 행하시고 - 이에 대해 혹자는 헬라적인 의미에서 백성들에게 은인으로 인정받는 군주에 대한 암시를 주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Haenchen). 즉 군주가 백성들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애정으로 도움을 베풀어 줄 때 헬라인들은 그 군주를 향해 선한 일을 행한다고 평가한다.

 

다시 말해 군주를 자신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베드로는 예수의 통치자적인 모습을 연상하면서 착한 일을 행하시는 것으로 진술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는 선하신 본질을 지니신 예수가 행하신 일에 대해서 유대적인 윤리 개념으로 진술했을 뿐이다.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예수의 기적 행위를 치유의 행위로 연결시켜 모든 악마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즉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베드로는 이 모든 능력을 하나님이 함께하는 증거로 말하여 예수의 모든 언행을 하나님의 권위로 정당화하여 설명하려고 한 것 같다.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10: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베드로와 그 동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아마도 열 두 사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예수에 관한 모든 일을 증언할 수 있는 증인, 즉 역사적 목격자이며 동시에 그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선언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부여받았다.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 예수는 온 인류를 위해 죄에 대한 저주를 담당하셨다. 그리고 이 저주는 신 21:22에 따라 나무에 달린 것 곧 십자가 지심과 깊은 연관이 있다.

 

(21: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5:30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고 묘사하였다.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따라서 본문은 초기 기독교의 상투적 증언 내용으로 예수의 죽음을 구약 예언의 성취로 보면서 또한 예수를 메시야로 증거하는 이중적 효과를 나타낸다.

 

 

 

[10:40]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 베드로는 예수의 죽으심에 이어 부활 사건에 대해 증거함으로써 당시 사도들의 증거 내용이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것임을 보여준다. 본 구절에서는 부활사건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베드로가 이미 본문과 같은 내용의 설교를 여러 차례에 걸쳐 설교한 점을 미루어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부활이 초대 기독교에 있어서 선포의 주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10: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 본 구절은 베드로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의 권위를 보증하려는 의도로 언급되었다. 즉 예수의 십자가 부활 사건이 모든 백성에게 보여진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선택한 몇몇 증인에게만 나타난 것이다.

 

이 표현을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사도권에 대한 배타적(排他的) 강조이다.

특히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증언자로서 선택되었다는 특권 의식을 강조함으로써 초대 기독교의 교권 중심을 사도 중심으로 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참조 :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둘째는 부활 사건에 대한 증인이 소수였다는 사실에 대한 해명(解明)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불특정한 다수를 통해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불러 세운 소수의 증인을 통해서 일하심을 밝힘으로써 소수에게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뜻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 - 부활의 증인으로 세움을 받은 사도들의 새로운 소명(召命) 체험의 시기와 사건에 대한 진술로서 아마도 눅 24:36-49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4:36-49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즉 베드로는 부활 후 함께 식사를 나눌 때 주어진 예수의 명령을 부활에 대한 증언자로서 선택된 사도들의 소명의식으로 이해했다.

 

초대 기독교에서 사도의 권위에 대해 문제가 되었을 가능성은 본서에서 사도권에 대한 계속된 강조 속에 암시되어 있다.

 

(1: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5-37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본 절 역시 사도권에 대한 정당성과 그 권위를 강조하려는 변증적 입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10: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 - 지금까지 베드로는 세상에 오신 메시야의 사역에 대해서 언급했으나 본 절에서는 세상 마지막 날 수행하실 그의 사역에 대해 진술한다. 이는 초대 기독교인들의 고백으로서 부활하신 예수가 장차 종말적 심판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에 대한 선포다.

 

증거하게 하셨고 - 베드로는 앞에서 언급된 내용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증언 내용을 정당화하며 증언의 권위를 부각시키고 있다.

 

 

 

[10: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 이 내용은 이미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3:18-19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33:24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31:31-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9:6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4:46-47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설교의 내용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죄 사함이 선포됨으로써 베드로의 설교가 종결되면서 복음이 사람에게 끼치는 결과가 핵심적으로 진술되었다.

 

즉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가, 믿는 자들에게 주어짐으로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죄 문제가 해결됨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