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거듭난 삶 2023. 11. 3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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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 선교에로의 출발

 

 

성 경: [11:1-18]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3)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8)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10)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11) 마침 세 사람이 내 우거한 집 앞에 섰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3)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침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11: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사도들과 형제들이 - 이방인 선교에 대한 초대 교회의 논쟁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면서 사도들과 형제들이 언급되는 것은 당시 교회 내에서 이방인 선교에 관한 논쟁이 매우 심각하게 논의되었음을 반증해 준다.

 

여기서 언급된 `사도들'12사도를 가리키는 말이며, `형제들'은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기독교인을 뜻하는 누가의 다양한 표현법 중 하나이다.

 

누가는 이 형제들을

 

`도를 좇는 사람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주의 성도

 

(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성도

 

(9: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라고

 

다양하게 묘사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 `말씀을 받았다'란 말은 고넬료의 성령 체험 사건(10:44-46)을 의미하는 것이다.

 

(10:44-46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또 당시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며칠 머물렀다는 점에서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전에 고넬료에 관한 소문이 예루살렘까지 퍼졌던 것으로 보인다. 본 절은 이방인 선교에 관한 정당성을 강조하고 설명하기 위하여 시작되는 이야기의 발단이 된다.

 

 

 

[11: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할례자들이 - 이방인 선교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로서 `할례자'들이 언급되는데 이는 `할례받은 사람들'로서 유대인을 가리키는 일반적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할례자들은 개종한 유대 기독교인을 가리킨다.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무할례에 대하여 상당한 우월 의식을 갖고 있음은 무할례자에 대한 그들의 노골적 편견에서 잘 입증된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으로서 모두 할례자였다는 점에서 볼 때, 여기서는 막연하게 유대 기독교인을 지칭했다기 보다는 특별히 할례를 강조하거나 유대적 전통을 자랑하는 자들로서 바리새파에 속해 있었던 자들(15:5)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15: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는 초기 기독교에서는 유대교의 우월감이 잔존하여 공동체 안에서 갈등적 요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힐난하여 -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이방인들과 함께 하였던 베드로의 행위에 대해, 할례자들은 단순히 문제점을 제기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단죄(斷罪)하여 비난하는 차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는 `힐난하여'가 단순히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해 집요하게 따지는 것을 의미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11:3]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 할례자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는 이방인으로 언급되는 무할례자와의 식사에 관한 것이다.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머무는 동안의 행적이 10장에서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베드로가 실제로 이방인들과 식사를 함께 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할례자들의 힐난에 대해 직접 베드로가 변명하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고넬료의 집에 며칠 머물면서 함께 식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할례자들이 무할례자들과 함께 식사한 것만을 이유로 베드로를 힐난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본절 이후 계속된 베드로의 변론 내용은 이방인에 대한 전도의 타당성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구절의 표현은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전도한 사실에 대한 것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11:4]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 비난하여 문제를 제기해 오는 할례자들을 대하는 베드로의 자세는 매우 장중(莊重)하고 권위있는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다. (Haenchen).

 

특히 본 구절에서 사용된 `설명하여'라는 단어는 `선포하다'라는 뜻을 지닌 `에크티데미'의 미완료 과거형으로서 어떤 변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목조목 분명하게 밝혀 선언하고자 하는 베드로의 의지가 암시되어 있다. (A.T.Robertson).

 

 

 

[11:5]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내 앞까지 드리우거늘 - 10:11에서는 `땅에 드리웠더라'로 묘사되어 있다.

두 표현 다 내용물을 베드로가 볼 수 있게 광주리가 드리워진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두 가지 표현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11: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들짐승 - `네 발 가진 것'에 대한 더 구체적인 묘사인 것 같다.

 

 

 

[11: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내게 이르되 - 10:13에서 이 구절은 생략되었다. 그 이유는 본 구절이 베드로의 직접적인 진술인 반면 10:13은 누가의 간접적인 묘사이기 때문이다.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1:8]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 10:14에서는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표현상의 차이일 뿐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11:9] 또 하늘로부터 두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하늘로부터 내게 대답하되 - 10:15에서 이 표현은 생략되어 있다.

 

(10: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는 베드로 자신에게 주어진 응답을 보다 구체적으로 성명해 주며 동시에 그 응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준다.

 

 

 

[11:11] 마침 세 사람이 내 우거한 집 앞에 섰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세 사람이 - 10:19에서 고넬료가 욥 바로 보낸 사람이 두 명으로 진술되어 있으므로 본 절과 숫자상의 모순이 발생했다.

 

(10: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그런데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계수(計數)할 때 여자나 어린아이, 시종(노예 포함)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두 구절을 종합해 볼 때 두 사람을 수행하기 위해 시종도 함께 왔음을 알 수 있다.

 

(10: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11: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이 여섯 형제 - 10:23에 베드로와 동행한 욥바의 형제는 두어 명이었다.

 

(10: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새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고넬료가 보낸 세 사람과, 베드로와 동행한 욥바의 두어 형제를 합치면 모두 여섯 명 정도 된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자기와 동행했던 사람을 데리고 갔던 것이 분명하다.

 

 

 

[11: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그가 너와 온 집의 네게 이르리라 - 10장에서 이 표현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본 구절은 천사에 의해 고넬료에게 주어진 내용을 요약하여 보다 강조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10장 가운데서는 생략되었으나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여 고넬료로 부터 들은 보다 자세한 이야기 중에 본 구절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11: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말을 시작할 때 - 베드로의 증언에 의하면 고넬료의 일가와 친구들에게 성령이 임재한 때가 베드로 자신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된다.

 

그러나 10:34-44에 따르면 베드로의 설교가 한참 진행된 뒤거나 아니면 설교가 끝났을 때 쯤이라고 언급된다.

 

참조 : (10: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여기서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이 임한 시점에 차이가 생긴다.

이에 대해서 다음 두 가지의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다.

 

(1) 혹자는 본문의 강조점이, 예기치 않게 갑자기 나타난 성령 강림 현상을 보여주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Haenchen).

따라서 본문에서는 성령이 임한 시점이 언제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2) 베드로가 설교를 시작할 때 이미 성령이 역사하기 시작해서 설교가 끝날 쯤에 오순절에 임했던 것과 같은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고넬료의 집에 있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이는 베드로의 설교 전체를 성령이 주장하셨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듣는 모든 사람들의 심령도 시종일관 주장하셨음을 가리킨다.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 10:47에서 베드로가 언급했던 말이 다시 반복되지만 여기서는 베드로가 `처음'이라는 단어를 첨가시키고 있다.

즉 베드로와 사도들이 오순절(五旬節) 성령 강림을 체험했을 때를 가리키고 있다.

 

 

 

[11: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침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주의 말씀에 침례 받으리라 - 이 말은 10:47,48에서 베드로가 자신있게 이방인에 대한 침례 선언을 하게 된 숨겨진 배경을 언급하고 있다.

 

(10:47-48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베드로가 기억해 낸 주의 말씀은 1:5에 나오는 부활한 예수의 말씀으로 보인다.

 

(1:5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와 같은 베드로는 자기 및 다른 형제들과 이방인의 성령 체험을 동일시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성령 체험을 예수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으로 언급함으로써 이방인의 구원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로써 베드로 자신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식사한 사실도 정당화될 수 있었다.

 

따라서 본 구절은 10:47에서 베드로가 언급한 바 있듯이 성령 침례가 기독교인 됨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권위있는 보증임을 말해주고 있다.

 

 

 

[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하나님이 주신 것과 같은 선물 - 베드로는 성령의 임재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로 이해하면서 이방인들도 사도된 자신들이 받았던 것과 동등한 선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 됨을 선언하고 있다. 이는 예수가 체포되시기 전 하셨던 기도의 성취로도 이해된다.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 본문은 10:47에서 언급한 베드로의 말과 비슷한 내용으로서 이방인을 기독교인으로 용납하고 침례를 베풀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 형제 됨을 인정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임을 못 박고 있다.

 

그리고 또한 베드로 자신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만을 따름을 암시한다.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러한 베드로의 선교 자세는 바울과 일치한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 이 표현은 베드로에게 비난 섞인 공격을 하였던 자들이 베드로의 설명에 아무런 이의(異意)를 제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베드로의 설명이 그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간접 묘사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 베드로에게 도전해 왔던 할례자들이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표현은 베드로가 계속하여 강조해 왔듯이 이방인에 대한 성령의 임재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전적으로 동의하는 행위이다.

 

또한 여기서 `영광 돌리다'`찬양하다'란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는 이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새로운 감격으로 다가왔기에 기쁨으로 그 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 베드로가 언급했을 법한 결론적 이야기를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이 먼저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주신 구원의 의미에 대해 극적인 효과를 높이고 있다.

 

즉 이방인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져 있음이 반대자들이었던 할례자들에 의해 선언됨으로써 초대 교회 안에 있어 온 이견들이 통합되어 이방인 선교가 확실한 권위와 보증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