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거듭난 삶 2023. 12. 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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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의 죽음

 

성 경: [12:20-25]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12: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 헤롯은 보복 조처로 시돈과 두로 지방에 대해 아마 식량 공급을 중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두로와 시돈은 솔로몬 시대 이후

 

(왕상 5:9 내 종이 레바논에서 바다로 수운하겠고 내가 그것을 바다에서 떼로 엮어 당신이 지정하는 곳으로 보내고 거기서 그것을 풀리니 당신은 받으시고 나의 원을 이루어서 나의 궁정을 위하여 식물을 주소서 하고;

 

3:7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수운하게 하였더라)

 

식량을 유대지역으로부터 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Josephus).

 

 

 

[12: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헤롯이 날을 택하여 - 앞절과 연관하여 볼 때 아마도 이 `'은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절단과 `평화 조약 체결'을 발표하는 날이었던 듯하다(Haenchen).

 

이와 달리 여러 학자들은 요세푸스의 글을 인용하여 이 날이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영국에서 돌아온 승리의 개선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경기일 둘째 날이었다고 말한다(Lenski, Whitelaw, H. Marshall, Bruce).

 

요세푸스가 묘사한 당시의 장면은 21-23절의 내용과 매우 흡사하므로 이보다 더 정확한 근거가 없는 한 부정될 이유가 없다.

 

(21-23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따라서 헤롯은 백성들이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날을 정하였던 것이고, 이와같은 축제일을 기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사절단이 헤롯을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헤롯은 은으로 만든 빛나는 옷을 입었으며 그 옷이 햇빛에 빛나자 아첨꾼들이 그를 신으로 추대하여 소리쳤다고 전해진다.

 

백성을 효유(曉諭)한대 - `효유하다'란 말은 군중을 향해 연설을 한다는 의미다. 이는 어떤 공식적인 행사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한편 `백성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아우투스'는 직역하면

`그들에게'라고 해야 한다(KJV). 그런데 지시대명사의 성격상 앞에서(20) 언급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Haenchen). 하지만 22절에서

헤롯의 연설에 반응을 보인 것은 `군중'을 뜻하는 `데모스'이다.

 

이는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축제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모든 `백성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헤롯은 경기일 둘째 날 모여든 모든 군중들을 향해 승전을 기념하는 연설을 했을 것이다.

 

 

 

[12: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이것은 신()의 소리요 - 당시 헬라 세계에서는 대개의 경우 모든 자연을 신으로 보기 때문에, 신들의 질서는 인간 세계와 밀접하며, 범상하지 않은 사람은 신으로, 기이하거나 거대한 자연 현상은 신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14:11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28:6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이와같은 범신론적인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신의 소리'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 헤롯을 향해 `신의 소리'라고 외친 사람들을 대해 요세푸스는 막연히 `아첨꾼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아첨꾼들을 유대인들로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비록 헬라나 로마 세계에서 범신론이 퍼져 있기는 해도 유일신 신앙을 가진 유대교는 그것을 배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함성은 `두로와 시돈의 사절단'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 이 말은 헤롯이 군중들이 자신을 추켜 세우는 함성을 듣고 매우 만족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루스드라에서 그 주민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추대할 때 바울과 바나바가 옷을 찢으며 그들을 만류(挽留)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했던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14:8-1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13) 성 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주의 사자가 곧 치니 - 헤롯의 불경건을 벌하기 위해 나타난 것은 베드로를 구출하기 위해 나타난 것과 같은 `주의 사자'였다.

 

그가 행한 것은 헤롯을 `쳤다'는 것으로 7절에서 잠들어 있는 베드로를 쳤을 때와 같은 말이다.

 

(7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그러나 여기서는 물리적인 힘을 가한 것이 아니라 그 사자가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어떤 조치를 취한 것으로 이해된다.

 

요세푸스는 헤롯의 죽음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기를 헤롯이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인해 5일 후에 죽게 됐는데 몸이 썩어 벌레가 생겨났다고 한다.

 

충이 먹어 - 헤롯이 죽어간 과정은 벌레에 먹히어 가는 과정이었다. 어떻게 먹히게 된 것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교회를 박해했던 헤롯의 비참한 최후를 강조하는 것이다.

누가는 이같은 묘사를 통해 교회를 박해하는 자가 맞게 되는 최후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보여줌으로써 독재자들이 기타 교권주의자들이 박해를 못하도록 경고하려 했던 것 같다.

 

헤롯을 죽게 한 것이 주의 사자였다는 것은 박해자를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 헤롯의 비참한 최후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는 본문은 기독교의 확장이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임을 강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

 

이같은 형식의 문장은 6:719:20에서도 나오는데 기독교의 거침없는 성장을 요약해 주고 있다.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12: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부조(扶助)의 일을 마치고 - 본문은 문맥상 매우 이질적이다.

 

11:30과 직접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11: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사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동안 베드로 구출 사건과 헤롯의 죽음이 있었는지 아니면 베드로 사건과 헤롯의 죽음 이후에 그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의 헌금을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전달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의 기근을 디베료 율리우스 알렉산더가 유대 총독으로 있을 때 발생한 것으로 기술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시점은 A.D.46년경으로 추정된다. (F.F.Bruce)

 

그렇지만 헤롯 아그립바가 A.D.44년 죽었으므로 그들의 예루살렘 방문은 베드로의 구출 사건과 2년 이상의 시간 간격을 두고 이루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