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바울의 예루살렘 체재 수일간은 그에게 있어서 고난의 연속이었다

거듭난 삶 2024. 2. 1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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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전도

 

사도행전 22-23

 

바울의 예루살렘 체재 수일간은 그에게 있어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괴로움 받기 위해 여기에 온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친구의 간절한 권고에 따라오지 않았던 편이 좋았을 것 아닌가!

그는 그의 의지를 관철해 나감으로서 무익한 고난을 자초한 것 아닌가?

그렇게 보면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요란의 와중에 몸을 던져, 지금은 아주 사로잡힘의 몸으로 되었다.

 

폭도의 손에서 군대에 구출되고 군대의 손에서 로마정청으로 인도되었다.

실로 수인(죄인) 바울이었다.

 

그는 행동의 자유를 잃었다.

그는 다만 속박 속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은 이빨을 갈면서 그에게 다가섰다.

 

그의 생명은 풍전의 등화였다. 그러한 경우에 있어서 예측의 행동은 불가능이었다.

다만 임기웅변으로 처신할 뿐이었다.

 

하지만 위기에 임하여 그는 마음의 침착을 잃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고 다가온 폭오(暴吳)에 대하여,

고요히 자기변호를 시도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또 그를 심판(판단)하기 위해 열린 집회에 있어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알력을 이용하여 자기 몸의 안전을 도모할 기지를 썼다.

 

그가 앞서 고린도인에게 써 보낸 대로,

 

그는

 

지금 죽은 자 같아도 산자, 공격되는 자 같아도 살해되지 않고, 근심하는 자 같아도 언제나 기뻐하는 자’(고린도후서 6:9-10)였다.

 

바울은 과연 무익하게 고생했던 것일까?

 

문제는 그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에 상경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을까?

 

인간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 자신도 때로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님 자신이 그에게 나타나,

그렇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그가 곤비한 가운데 있을 때

 

, 그 밤, 바울의 곁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바울아 대담하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내게 대해 증거한 것 같이, 반드시 로마에서도 증거하리라(사도행정 23:11)

 

이같이 하여 예수 자신이, 예루살렘에 있어서의 바울의 행동을 가상히 여기셨던 것이다.

 

즉 바울은 그곳에 있어서 해야 할 것을 했다.

다시 나아가 세계의 도성인 로마에 있어서 같은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때,

주의 이 말씀으로 얼마나 힘을 얻었으랴!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어서 그의 목적을 달할 수 없었다.

유대교회와 이방교회와의 조화일치를 성취할 수 없었다.

또 이방의 성읍에 있어서와 같이 많은 신자를 일으킬 수 없었다.

평화의 사명을 다 할 수 없었다.

전도의 효과를 올릴 수 없었다.

다만 고생할 뿐이었다.

 

그러나 고생 그것이 큰 사업이었다.

 

그는 고난에 의해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그가 살아계셔서 일하시는 일에 대하여 증거했다.

 

그리고 그의 말로서 뿐 아니라 그의 행동으로서, 그 증명을 했다.

 

그가 후에 이르러 빌립보인에게 써 보낸 대로

 

또 그(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능력을 알고, 그 죽으신 모양 따라 그의 고난에 참예’(빌립보서 3:10)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행동 그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좋은 증명이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어서 달리 아무것을 못했다 해도 이 한 가지 일을 했던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죽으신 모양 따라 고생하며,

그에 대해 선한 증거를 했던 것이다.

 

실로 전도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는 일 아닌가?

 

전도는 신자를 만드는 일 아니다.

교회를 일으키는 일 아니다.

저 사업 이 사업을 하는 일 아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는 일이다.

행동, 특히 고난으로서 하는 증거이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공격받고 고생하는 것은 최선의 전도이다.

 

이 의미에 있어서 바울의 예루살렘 전도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이것을 주께 교시받아 아주 위로 되었으리라.

 

실로 용기백배하여,

다시 또 크게 고난 받으리라는 결심을 일으켰으리라.

 

바울은 물론 이때 이를 안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그가 분명히 이것을 안 것은 이때이리라.

 

이래, 그는 이 방침으로 그의 생애의 목적으로 했으리라.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어서의 바울의 악전고투는 하나님의 섭리아래 행해졌다.

몇 번인가 죽음으로 정해졌다가 몇 번인가 면해졌다.

폭도의 손에 살해되려는 찰나에 로마의 군대가 와서 그를 구했다.

 

40인의 유대인이 당을 지어 서약하에 그를 암살하려고 한 때에,

바울의 자매의 아들(생질)이 알게 되어, 음모는 실패로 끝났다.

 

그에게 또 때(기회)에 맞는 기지가 생겨, 그의 교적을 혼란에 빠뜨리게 했다.

 

드디어 예루살렘에서 탈취되어 가이사랴로 옮겨져, 거기서 2년간 안전한 금고의 몸으로 되었다.

 

그의 국인(國人)에게 버린바 되고,

예루살렘 교회에까지 소원(疎遠)되고,

 

그는 이방인의 보호 아래 안전할 수 있었다.

모두가 특이(현저)한 섭리였다.

 

바울은 주() 위해 증거하고,

()는 그의 일신()을 지키셨다.

 

바울의 씩씩함(용감성),

그가 최후까지 그의 로마 시민권을 과시하지 않은데서 본다.

 

그가 일찍이 이것을 보였더라면,

그는 처음부터 수모를 받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는 이 세상의 특권은 가능한 한 쓰지 않도록 애썼다.

우리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촌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