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들)의 시험 2
마태복음 4장 1-11절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예수의 들(광야)의 시험을 연구함에 있어서
2, 3의 선결문제가 있다.
그 1은, 사람은 과연 40일간 단식(fassing)할 수 있는가이다.
그 2는 사탄이라는 자는 과연 실재하는 가이다.
제 3은, 기적 과연 행해졌던가 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의 문제를 연구하는 경우는 아니다.
우리들은 성서의 기사 그대로를 사실로서 받고, 목전의 연구에 착수할 것이다.
시험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나, 사람에게 임하는 시험은 그 사람에 따라 다르다.
청년에게는 청년의, 어른에게는 어른의, 노인에게는 노인의,
남자에게는 남자의, 여자에게는 여자의 시험이 임한다.
그리고 예수에게는 예수 상응의 시험이 임했던 것이다.
이른바 ‘들의 시험’은 예수의 시험으로서 임한 것으로서,
우리들은 먼저 이것을 예수 특유의 시험으로서 연구할 것이다.
그리고 후에 그 가운데서 시험의 통유성을 발견하여
이것을 우리들 각자에게 임하는 시험에 적용하여
시기에 맞는 교훈을 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수는 요한의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온 때에,
‘이는 내 마음에 합한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하늘에서의 소리(음성)에 접했다.
오늘의 말로서 한다면,
그는 이때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악마는 이 소리를 지워버리려 했던 것이다.
이것이 시험의 요점이다.
예수는 하늘에서의 음성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일을 시험받기 위해,
그는 황야에 인도된 것이다.
그러므로 악마는 먼저 제일로 말한 것이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빵이 되게 하라’고.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
‘만약’(만일)은 의심의 말이다. 예수는 확실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접했다.
그런데 악마는 그에게 의심을 가지게 하려하여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말로서 말을 걸어왔다.
더구나 요점은 식물(食物)문제에 있는 듯이 보이면서
예수의 주의를 다른 데로 끌려했다.
그 교묘함이란 실로 놀랄 만하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을 빵이 되게 하라’고.
굶주림을 채우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예수에게 지금 돌을 빵 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지금 어찌하여 이 능력을 써서 빵을 만들어,
그의 귀중한 생명을 보전치 않는가?
하지만 예수는 곧 악마의 암시의 진의를 간파(penetration)하셨다.
이것은 그의 생명을 도우렴에서의 조언은 아니다.
이를 부수려는 것은 그 악마의 최대의 희망이다.
악마의 목적은, 예수가 하나님의 명하심을 기다리지 않고,
악마의 말에 귀를 기울어, 그로 하여금 여기에 정당한 이유 있는 기적을 행케 하고,
하나님과 예수를 이간케 하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이에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 라고.
예수는 여기서 구약성서 신 8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신 것이다.
그 의미는, 보통 해석되는 것 같이,
‘사람은 육체를 기르는 빵만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기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말씀의 의미는,
‘사람은 빵으로서 사나, 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즉 하나님의 명하심에 이해 주어지는 빵으로서 사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빵은 빵이기만 하면 그 출소를 묻지 않고,
그(빵) 이것을 얻는 방법을 묻는 일 없이,
빵은 도덕문제 또는 신앙문제를 떠나 생각할 것이라는
세상 보통의 생각에 대하여, 예수는 이 말씀을 말하신 것이다.
예수는 이때 굶주리시어 심히 빵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그에게 또한 이것을 만들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지 않고서 이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빵을 먹는 것은 아사함만 같지 못하다고,
그는 굳게 서서 동하지 않았다.
요는 하나님께 대하여 아들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었다.
하나님의 적인 악마의 말이라면,
가령 정당한 이유가 있다해도 단연 이것을 물리치는데 있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보존하기 위해 악마와의 관계를 끊는데 있었다.
l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동하지 않기 위해,
예수는 여기서 아사를 결심하신 것이다.
악마는 첫째의 시험에 있어서 실패했다. 그러므로 둘째의 시험을 시도했다.
그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몸을 아래로 던져보라∼’고.
그 목적은 전회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의 소리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게 하고
아버지와 아들을 이간시키려는데 있었다.
그러나 목적은 마찬가지였으나, 방법은 달랐다.
전에는 예수로 하여금 자기의 능력을 시험케 하려 했는데,
지금은 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시험케 하려 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시험은 아버지의 사랑의 시험이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정당한 시험 아닌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전한 것은 음성(소리)인데 지나지 않는다.
음성에 틀림없다고 할 수 없고, 음성은 그 사실을 시험함의 필요 있는 것 아니냐고,
악마는 여기서 예수께 속삭인 것이다.
성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는가!
네가, 만약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네 몸을 붙들어 너로 하여금
돌 위에 떨어져도 무난케 하신다고.
성서의 이 말씀을 실험적으로 시험하고, 그런 후에 구세(救世)의 길에 오름,
이것 뜻을 굳게 하고 확신으로서 일하는 길이 아닌가고 하여,
악마는 예수의 대업을 보좌(Support)하는 듯이 보이며,
그에게 모험을 촉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의 이에 대한 대답도 또한 명백했다.
악마는 시편 91편 11절에 의해 예수를 유혹했으나,
예수는 신 6장 6절로써 이에 대답하셨다. 말씀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그 의미는,
‘하나님은 그 말씀에 의해 믿을 것이다. 이것을 시험할 필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족하다. 기적과 표정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다고 함은, 이는 불신이다. 죄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는 이미 분명히 하늘에서의 음성을 들으셨다.
그 사실을 시험할 것 못 된다.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 마저, 그 말을 믿지 않고
그 증거로서 실물을 요구하는 것은 무례이다.
하물며 하나님에 대해서랴!
친한 가정의 관계는 모두 신용에 의해 유지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그 증거를 구하기에 이름,
여기서 3위의 거룩한 관계가 그 한편에 있어서 깨어지는 것으로서,
예수께 있어서는 그 이상 없는 중대 사건이다.
예수의 성안(聖眼)은 악마의 계휼(wicked trick)을 잘 간파(penetration)하셨다.
그러므로 일언으로서 이것을 갈파하셨다.
악마는 예수를 시험하여 두 번 실패했다.
그는 예수로 하나님에 대한 아들로서의 태도를
조금도 움직이게 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있어서인가?
전연 수단 방법을 바꾸어 예수에게 임했다.
악마는 예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이신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나도 또한 세계만민과 함께 당신의 대업이 이룩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일은 난사이다.
그리고 백성은 도탄에 시달려, 하루라도 빨리 구원되기를 바라마지않는다. 선을 서둘라. 당신의 경우에 있어서, 성공 하루의 지체는 만방 백년의 재액에 해당된다.
어찌 조금 나를 이용하여 당신의 성공을 빠르게 하지 않는가! 단시일 사이에 나라를 구원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정치에 의함만 같지 못하다.
당신의 천직과 재능으로써, 이스라엘을 인솔하여 세계를 통어하기는 아주 쉬울 것이다.
보라, 전 세계는 당신의 궐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먼저 병력, 외교, 내치로써 세계를 통일하고, 그런 후에 당신의 구세적 사업을 행함, 이것 가장 빠르고 또 가장 쉬운 세상을 구함의 길이 아니냐고.
다만 조금 내게 듣고, 나를 중히 여기며 나를 쓰면 족하다. 당신은 내 이 제언을 채용하지 않겠는가?고.
예수는 악마의 이 속삭임을 듣고서, 특별히 이에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악마는 여기서 악마로서의 정체를 나타냈다.
일언 이것을 질타(scolding)하면 족하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을 예배하고, 다만 이에만 쓰이라(섬기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악마(사탄)의 힘은 털끝만큼도 이것을 빌 것이 못된다.
다만 하나님의 능력, 그 의와 사랑으로서만 행할 것이다.
때(시간)는 가령 오래 걸리더라도,
길은 가령 멀어 어렵다 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에 의해서만 세울 수가 있다.
전에는 느부갓네살(2권 100역주), 알렉산드로서(11권 122역주),
씨자(8권 318카에사르 역주), 후에는 샬레만(카를 1세 742-814 서로마황제, 프랑크왕),
나폴레옹(14권 229역주), 카이제르(2권 107)의 취한 길,
이것은 사탄이 보여주는 길로서, 그릇된 길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조금이라도 악마의 길,
즉 이 세상의 길에 의하지 않고서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을 시작하셨다.
아아 거룩한 위대하신 예수여,
만약 주의 제자라 칭하는 자가 모두 주의 취하신 길을 취해왔다면,
세상은 지금 즈음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로 되었으리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와 정반대이다.
그리스도교회라 일컫는 것은,
이 세상 즉 사탄의 길을 취하여 세계교회를 꾀하고 있다.
분개 어찌 금할 수 있으랴!
*내촌감삼의 ‘갈릴리의 길’을 연재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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