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 십자가의 길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거듭난 삶 2024. 3. 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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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에 대해서

 

사탄(마귀, 악마), Satan

사탄은 대적하는 자라는 뜻.

 

그리스어 <사타나스(satanas)>는 아람어 <사타나>에 관계가 있다.

그리스어역(칠십인 역 Septuaginta)에서는, 2, 3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개의 경우 <디아볼로스(diabolos)>로 역 되어 있다.

 

본래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천사였는데, 하나님께 반항하여 천국에서 쫓겨난 악마(마귀),

천상에서는 뱀으로 화하여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고(3),

신약에서는 유혹자(시험하는 자, 4:1-11; 4:1-13), 배반자(22:3)등으로 보이고 있다.

 

(22: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1. 구약에 있어서의 사탄 -

구약에 있어서는 사탄은 어디에도 하나님께 적대하는 반신적 존재로서 나타나 있지 않다.

 

그 용례는 역대기상(21:1), 욥기(1:6, 7, 8, 9, 12;2:1, 2, 3, 4, 6, 7), 스가랴서(3:1, 2)의 세 권에 나올 뿐이다.

 

확실히 그곳에서는 사탄의 이름은 초인적 존재로 적용되어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보통명사이지 고유명사는 아니다.

 

이 몇 곳에 보이는 사탄 상(), 후에 보이는 사탄처럼

하나님께 적대하는 악령의 두목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가 밑에 행위하는 하나님께 종속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일(활동)은 주로 인간의 죄를 하나님께 고발하는데 있다.

단지 이러한 고소자로서의 사탄이 이원론적 우주적의미로

하나님께 적대하는 제영의 두목으로서 생각되게 된 것은 후기 유대교에 있어서이다.

 

2. 후기 유대교에 있어서의 사탄 -

유대교에서는 하나님께 적대하는 반신적 존재가 언제나 사탄의 명칭으로 불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벨리알, 또는 마스테마라는 명칭이 보다 일반적이었다.

기타 아사셀, 셈야자, 사마엘 등의 이름이 발견된다.

 

특히 쿰란종단( Qumran Community Sect)의 문헌 중에 많이 보인다.

주지대로, 쿰란에 있어서는 세계는 빛의 임금’, ‘진리의 영이 지배하는

빛의 영역과 암흑의 천사’, ‘불의의 영이 지배하는 암흑의 영역과의

둘로 명료하게 나뉘어지는데,

벨리알은 암흑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수령, ‘암흑(어두움)의 천사이다.

 

이 쿰란의 이원론은 이란의 조로아스터교(7138역주)의 그것과 유사해 있다.

즉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선악의 둘이 대립해 있어,

선은 <아후라 마즈다 Ahura Mazdah>,

악은 아리만(Ahriman) 인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원론은 선악이 각각 독립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윤리적 이원론인데,

쿰란의 그것은 암흑의 천사 벨리알도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며,

최후의 심판에 있어서 하나님에 의해 멸망될 운명이라는 상대적 윤리적 이원론이다.

 

또한 이 쿰란의 이원론에 영향을 준 묵시문학중의 하나인

요벨서(he Book of Jubilees) 에 의하면

악령은 창 6:1-4에 나오는 타락한 천사의 자손이다.

 

그 악한 제령의 두목이 마스테마로서, 그는 인간을 죄에 유혹하고, 고발하며

심판의 사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거기서는 하나님의 지배에 적대하는 반신적 존재로 되어 있다.

 

또 이미 구약에 있어서(14:12;28:16; 38:7),

루시퍼(Lusifer)에 대하여 말해지고 있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생애’ 12장 이하에서는 사탄에 전용되고,

그가 가장 우위의 천사에 속해 있던 것, 더구나 전 천사군중의 수령이었는데,

결정적인 때에 하나님께 적대하고, 하나님과 동등이 되려한 교만 때문에,

다른 천사들과 함께 천상에서 추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랍비들에 있어서는 선악의 대립은

묵시문학, 쿰란의 그것처럼 이원론적 우주적이 아니고, 종교심리적 이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는 선악의 대립은 선한 충동악한 충동의 대립이다.

 

그들은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의 뿌리를 이 악한 충동가운데서 발견했다.

악한 충동과 사탄과 죽음의 사자는 하나의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악한 충동선한 충동또는 율법에 의해 극복된다고 했다.

 

이와 같이 랍비들은 율법에 기초한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

악을 극복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쿰란이나 묵시문학에 있어서와 같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넘어선

우주적 존재로서의 사탄 상은 전개될 여지가 없었다.

어쨌거나 종말에는 이들 악의 힘이 멸망된다는 점에서는 후기 유대교는 일치하고 있다.

 

3. 신약성서에 있어서의 사탄 -

사탄의 명칭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1) 사탄 -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도행전, 바울의 서한, 계시록에 모두 보인다.

(2) 마귀(개역) - 마태, 누가, 요한, 사도행전, 바울서간, 히브리, , 벧전, , , 계시록에 보인다.

(3) 시험하는 자 - 마태 4:3; 살전 3:5.

(4) 악한 자 - 마태 13:19; 1 5:18.

(5) 고소하는 자(새번역) 또는 참수하는 자(개역) - (12:10).

(6) 원수 - 마태 13:39, 10:19.

(7) 대적 - 벧전 5:8.

(8) 귀신들의 왕 - 9:34; 12:24; 3:22; 11:15.

(9) 이 세상의 임금(개역) 또는 이 세상의 통치자(새번역) - 12:31;116:11.

(10)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2:2.

(11) 벨리알 - 고후6:15.

(12) 바알세불 -마태 10:25; 12:24, 27; 3:22; 11:15, 18-19.

이상의 용례에서 신약은 그 사탄만을

구약 및 후기 유대교의 사탄 표상을 써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서에 있어서 사탄이 최초로 보이는 것은 광야의 시험(유혹)에서이다.

일찍이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예수에서 아담에 이르는 유혹),

광야에서는 이스라엘(침례 요한의 설교, 예수의 유혹)을 유혹하여,

하나님께 이반케 하고, 불순종의 길로 타락케 한 것 같이,

 

이제 예수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순종의 길에서 전락케 하기 위해

유혹을 시도한 자로서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반대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순종의 길을 온전히 하는 것에 의해,

일찍이 아담이나 이스라엘이 굴했던 사탄의 유혹을 극복하고,

이 세상에 대한 사탄의 지배를 종결케 하여,

하나님의 지배를 확립하는 계기로 했다.

 

그러므로 이 사탄의 지배를 끝나게 하는 순종의 길을 방해하는 자는

베드로라도 예수에 의해 사탄아, 물러가라고 질책되었다.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또 예수의 귀신 추방의 역사는 사탄 및 악령에 대한 예수의 승리,

하나님의 지배의 도래로 보이고 있다.

 

바알세불 문답은 그 점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3:20-3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귀신 추방에 대한 율법학자들의 비난에 대하여

예수는 자기의 일을 그들이 말하는 대로 사탄의 왕국내의 내부 항쟁으로서가 아니라,

 

강한 자 사탄을 결박한 후의 사탄의 수하에 있는 귀신(악령)들에 대한

예수의 맹공격이라 언명하시고 있다.

 

이 강한 자의 결박이란 광야에서 예수님이 사탄의 유혹에 승리하신 사건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해 악령(귀신)까지 따르더이다라는 72인 제자의 보고에 대하여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했는데,

 

이는 같은 사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여 좋으리라.

 

요한복음서 및 그 서신에는,

빛과 어두움, 진리와 거짓,

하나님과 마귀(악마),

하나님의 아들과 마귀의 자녀의 대립은 특히 쿰란(Qumran)의 이원론에 유사하다.

 

요한복음의 이 세상의 임금이라는 표현은 이미 묵시문학(이사야 24:21 기타)에 보인다.

 

(이사야 24:21 그 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에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그러나 양자의 차이는

후기에 유대교에 있어서는 이 세상 임금’(땅의 왕)에 대한 심판은 장래의 일인데 대하여

요한복음서에 있어서는, 그 심판은 예수의 십자가에 있어서 현재의 사실이다.

 

(12: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그 외의 서간에 있어서는,

사탄은 박해 및 시험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공격하는 자로서 보인다.

 

그러므로 교회의 싸움은

모든 지배와, 권위, 어두움의 세상의 주권자, 또는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5:12)이며,

 

교회를 박해하는 유대인은

사탄의 회에 속하는 자’(2:9;3:9)라 말해진다.

 

이 사탄은 또 천상에서 미가엘과 그 사자들과 싸워 패배한 용이며,

낙원에서 아담을 유혹한 뱀이기도 하다.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상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는 사탄 상을 통하여 말할 수 있는 사탄의 본질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고, 인간(과 세계)을 죄와 죽음 가운데 빠뜨리는 일,

즉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업을 부정하는 허무의 영, 어두움과 혼돈의 영이다.

 

그러나 성서는

 

예수의 사탄에 대한 승리,

죽음에서의 부활에 의해,

이미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주 예수 안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들을 끓을 수 없이 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8:31-39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내촌감삼의 길릴리의 길을 연재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