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 십자가의 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거듭난 삶 2024. 3. 3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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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빛

 

마태복음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축복의 말씀으로서 그 무엇인가를 제시받은 예수의 제자는

일면에 있어서는 땅의 소금이라 하고, 또 다른 일면에 있어서는 세상의 빛이라고 한다.

 

소금이요, 또 빛이라고 한다.

반대성을 지니며, 그럼에도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자라고 한다.

 

크리스천의 세상에 대한 지위를 말하는 말로서, 이것보다 깊은 것은 없다.

 

소금은 땅에 보통 있는 것의 하나이다.

해수(海水)3.33퍼센트는 소금으로서, 450만 입방마일(1.875만 입방 km)의 소금 덩어리가 생겨나리라는 것이다.

즉 유럽대륙을 14개 반()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양이라고 한다.

 

기타, 암염으로서 남는 것 무량. 흙 가운데, 물 가운데, 동식물의 몸 가운데, 어디든 있는 것은 소금이다.

 

인축의 생활에 필요 불가결의 것으로서, 물과 일광을 제외하고 소금에 미치는 것은 없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시어 예수는 그의 제자가, 땅에 있어서 이 필요성을 지니는 자임을 명시해 주신 것이다.

 

세상은 신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신자는 세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전연 승인 않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인의 생활에 있어서 소금은, 현대인의 그것에 있어서 보다도 훨씬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소금은

첫째로 맛나게 하는 것,

둘째로 부패를 막는 것이었다.

 

즉 고대인 유일의 조미료이며, 또 방부제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소금 없는 생활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들은 오늘의 우리들 처럼, 소금에 대신할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므로 소금 덩어리는 화폐로서 씌었다.

오늘날 급료를 Salary라고 하는 것은 그 일의 유적 (remaining vestige)이다.

 

소금 있어서 음식물에 맛있고, 소금 있어서 부패를 막는다.

그리고 크리스천은 땅에 있어서 소금의 직무를 하는 자라고 한다.

 

인생에 의미를 주는 자, 그 부패를 막는 자, 참된 크리스천 없이 인생은 무미담담,

또 부패백출하여 그 저지할 바를 알지 못한다.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도 남음 있다.

우리나라 오늘날의 상래 같은 것, 역시 예수의 이 말씀에 많은 설명적 사실을 제공하는 것이다.

 

소금은 땅의 가미제(加味劑) 또는 방부제(防腐劑), 실로 생명 그것이다.

 

하지만 소금이 만약 그 맛을 잃으면 어떻게?

무엇으로서 다시 맛나게 하랴?

아무 쓸데 없다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예수는 말씀하셨다.

 

소금이 맛을 잃는다는 것은, 소금에서 그 염분을 제거한다면 이라고도,

또는 소금이 만약 소금으로서의 효력을 잃는다면으로도 해석할 수가 있다.

 

원어의 의미를 강한 일본어로 역한다면,

소금이 만약 바보로(못쓰게) 된다면이라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소금이 만약 부패물에 너무 오래 접하여 부기를 지녀,

가미방부의 용도를 다하지 못하기에 이른다면 어떻게?

 

세상에 소금에 맛나게 할 것 없다.

그러므로 바보(못쓰게) 소금은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예수는 당시의 갈릴리인의 일상 생활에 있어서의 소금에 관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의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소금에 관한 사실은 또 크리스천에 관한 사실이다.

신앙을 잃은 크리스천은 맛을 잃은 소금이다.

후에는 쓸데 없다.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사람 즉 불신자에게 밟힐 뿐이다.

세상에 가련한 자로서, 속화(俗化)된 신자 같은 것은 없다.

 

소금은 어떻게 하여 영구히 보존할 수 있을까?

소금위에 무한하게 소금을 더하는데 의해서이다.

누까미소(일본 김치를 담는데 쓰는 겨에 소금을 섞은 것 numberless small stars-역자)의 보존법이 또한 신앙의 보존법이다.

 

소금 위에 소금을 더하여, 누까미소가 영구히 그 효력을 잃지 않듯,

도리어 오랜 것일수록 좋은 것으로 되듯,

신앙 위에 신앙을 더하여, 신자는 영구히 신앙을 지속하고, 뿐만 아니라 오랜 것만큼 그것만큼 좋은 것이다.

 

성서의 연구도 계속하지 않고 기도회에도 출석치 않고서

사회운동에만 종사하는 신자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쓸모없어, 사회 그것에 마저 버림받기에 이른다.

 

땅의 소금인 신자는 또 세상의 빛이다.

소금은 땅에 있어서 이것을 가미하고, 그 부패를 막는 것,

 

그런데 빛은 세상을 떠나서, 멀리 위에서 이것을 비추는 것이다.

신자는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 명백하게 설명한 비유이다.

 

신자는 세상에 접촉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을 해탈(emancipation)하여 높은 데서 이를 가르치고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나 소금이어야 한다. 또 언제나 빛이어야 한다.

소금임과 동시에 빛이어야 한다.

 

신자는 세상의 빛이어야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공문공시를 피해서는 안 된다. 또 피할 수가 없다.

산 위에 세워진 성은 숨길 수가 없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는 자는 없다.

반드시 촛대 위에 두어,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비추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불러 신자로 하여, 그를 사회의 구석에 감추어 두시지 않는다.

그를 사람의 보는 곳에 두어, 세상의 어두움을 비추게 하신다.

 

공개를 꺼려하고, 이것을 싫어하는 신자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신자로 삼으신 그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이다.

 

세상에 등불을 켜서 이것을 말 아래 숨겨 두는 어리석은 자 없듯이,

허다한 소위 신자는, 자기가 하늘의 빛을 받아 그 빛나는 그릇으로 된 것이,

혼자 사람 없는 곳에 숨어 그 광휘를 즐기기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우인(友人) 취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은사)은 모두 하나님 위한 선물이다.

 

이것을 자기 위한 선물로서 즐기려고 하는 때에, 하나님은 곧 이것을 철회 하신다.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인 신앙도 또 하나님 위해 써야할 것이다.

스스로 하나님이 두신 곳에 서서, 세상을 비추어 가르치고 인도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 겸손을 가장하여 도망쳐 숨고, 무엇보다도 공개를 꺼리며 신앙은 은근히 이것을 가지고, 은근히 믿으며, 은근히 아버지의 품으로 가려한다.

이것은 겸손은 아니다. 자기임의 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에게 오래 신앙을 주시지 않는다.

어느 정도까지의 경계를 가하여 이에 응하지 않으면, 그에게서 신앙의 은사를 철회하여,

그를 본래의 암흑의 그릇이 되게 하신다.

 

세상에 하늘의 빛으로 점화된 자 적지 않음에 불구하고 세상은 의연히 암흑의 세상임은 어찌해서인가?

 

이들이 사람에게 눈 띄는 것을 두려워하여 도망쳐 숨고, 신앙의 증명을 하지 않고,

전도의 비난 받는 일선에 서지 않고, 자기는 신자인데 애써 불신자를 가장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의 주의를 피하고자 겁내면서 어찌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탄식, 신자 자신의 불행, 이상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 앞에 너희 빛을 비출 것이다’.

 

산 위에 세워진 성 같이, 또 촛대 위에 놓인 등불 같이,

너희 빛을 비추라.

 

옳다. 너희를 비추라고 하지 않고 너희 속에 점화된 너희의 빛을 비추라고 한다.

 

이것을 감싸두고서 자기 한 사람 그 빛을 받으려 하지 말라.

 

그래야만 사람들이, 너희들이 말하는 빛을 우러러 보며, 너희를 칭찬하지 않고서,

하늘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를 찬양할 것이라고.

 

크리스천은 모두 세상의 빛이다.

그들 없이, 혹은 그들이 그 빛을 발하지 않는 때, 세상은 암흑이다.

 

시험 삼아 생각하라,

만약 모든 크리스천이, 허다한 신자가 하듯, 절대적 침묵을 지킨다면, 그 결과 어떨까고?

 

그렇다면 당신도 나도 복음의 환희를 모르고서 세상을 끝마쳤음에 틀림없다.

그들이 대담하게 그 신앙을 말했기에, 우리들은 오늘의 복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어찌하여, 주어진 빛을 덮으면서 세상의 암흑을 탄식하는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이사야서 60:1-2 한글개역)라고 있다.

 

하나님은 그 보내신 사람으로써 지금도 이 일을 우리에게 고하신다.

 

만약 전 세계의 크리스천이 하나로 되어 전쟁에 반대한다면, 전쟁은 곧 그치리라.

 

만약 일본 중의 크리스천이 일제히 서서 복음을 부르짖는다면,

일본국은 수년 내에 그리스도의 나라로 되리라.

 

*내촌감삼의 갈릴리의 길을 연재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