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부활의 실증(實症)
‘그리스도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위해 죽으시고,
또 성서에 기록된 대로 장사되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고린도전서 15:3-4)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 부활의 사실 위에 서는 종교이다.
이 사실 없이 그리스도교는 생겨날 수 없었고, 또 유지될 수 없으며, 또 오늘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 만약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전하는 바(복음)는 헛것이며,
또 너희(신자)들의 신앙도 헛될 것이다 ∼
만약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너희의 신앙은 헛것이며,
너희들은 아직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 (고전 15:14이하 참조)이다.
사도들의 전한 그리스도교는 실로 일목요연(obvious)하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은 말한다. 그리스도 부활의 사실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없어서 안 될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이것만 있으면 그리스도가 장사 되고, 그 육체가 무덤 안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 등은,
믿어도 가하다, 또 믿지 않더라도 불가하지 않다고.
그 점에 있어서 현대인의 그리스도교와 사도들이 전한 원시의 그리스도교와의 사이에 근본적인 상위가 있다.
교회 역사의 태두 하르나크(8권 421역주)는 말했다.
‘우리들 현대의 그리스도 신자에게 부활절의 신앙은 있다. 하지만 부활의 사실의 신앙은 없다’고.
그리고 오늘은 부활의 사실의 신앙 없이도 훌륭한 그리스도 신자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만 교의 또는 신앙개조는 아니다.
이것은 도리와 실험에 반하여 억지로 믿을 수는 없다.
이는 또 역사가의 연구를 기다려 증명될 보통의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이것은 신자의 오늘의 실험, 오늘 인류의 사이에 일(역사)하시는 바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는
석가(2권 282역주)나 공자(6권 11역주) 또는 소크라테스(1권 70역주)등과 같이,
한 번 있고, 지금은 과거에 속한 인물일까?
그렇지 않다고 크리스천은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지금 살아계셔서 인류 사이에 강하게 일(역사)하시는 것으로 우리들은 믿는 것이다.
‘내가 사니 너희도 사는 것이다’(요한복음 14:19)라고 그는 말씀하셨다.
또
‘보라 나는 세상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 (마태복음 28:20)고 하셨다.
베드로는 말했다.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나 이를 사랑하고 지금 보지 못하고 믿으나 기뻐한다’(베드로전서 1:8)고.
예수는 지금도 살아계신다.
우리들과 함께 계셔서 일(역사)하신다.
눈에 보이지 않는대도 그 존재는 확실하다는 것은,
그리스도 신자 전체가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들리나,
그러나 현재 살아계시는 그리스도 없이 활동의 그리스도는 없는 것이다.
유명한 죤 워너메이커는, 시부자와 자작을 그의 필라델피아의 베다니 일요 학교에 맞이하여 그리스도와 공자를 비교하여 말했다는 것이다.
‘공자는 죽어 무덤에 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는 오늘(지금) 이 예배당내에 계시다’고.
실로 유교(10권말 특주)와 그리스도교와의 사이에 이 근본의 상위가 있는 것이다.
전자는 공자의 유훈이다. 후자는 그리스도 직접이다.
죽은 교사와 산 구주, 공자와 그리스도와의 사이에 사(死)와 생(生)과의 차위가 있는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가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그의 복음은 결코 발전치 않는 것이다.
이 세상의 부패에 동반하는데 이른바 그리스도교회 그것의 부패로써 하여 어떻게 그리스도교 같은 종교를 유지하여 갈 수 있으랴!
일본에 있어서의 그리스도교 같은 것, 유지하기에 아주 곤란하다.
미국인 돈 따위를 가지고 도저히 이것을 유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활한 그리스도 자신이 그 전도를 지휘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으로 교회는 아무리 부패해도, 밖으로는 문학박사, 이학박사라고 하여
반대자가 몇 백, 몇 천인 나온대도, 참된 그리스도교는 조금도 겁내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오늘 이곳에도 계신다.
우리는, 그를 보지 못하나 이를 사랑하고, 지금 보지 못하나 믿고 기뻐한다.
그 기쁨은 형언하기 어렵고, 또 영화롭다.
그리스도 부활의 증거는, 현재에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이 살아계시는 증거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성서의 부활에 관한 기사를 읽고
이것을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실험치 못하고서 신학의 태두라 해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명할 수가 없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들은 이 희망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내촌감삼의 ‘갈릴리의 길’을 연재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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