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거듭난 삶 2024. 6. 2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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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류의 죄 2

 

성 경: [3:13-18]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3: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본절은 시 5:9;14:3에서 인용된 것이다.

 

(5: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4: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 팔레스틴에 있는 무덤은 사람이 서서 드나들 수 있을 만큼 큰 굴로 되어 있으며 그 입구는 돌로 막게 되어 있다.

 

(1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따라서 바울이 사람의 목구멍을 열려 있는 무덤에 비유한 것은 그 목구멍이 어떠한 것도 삼킬 만큼 넓다는 의미이다.

 

이와 유사하게 예수께서 외식(外飾)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고 비유적으로 책망하신 적이 있다.

 

(23: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인간은 입을 통해서 온갖 더러운 것을 토해내며,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불이 수많은 나무를 태울 수 있듯이 인간의 혀도 자신의 영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조차 죽일 수 있는 지옥 불과 같다.

 

(3:5-6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 5:9의 인용으로 히브리어 사본에서는 '혀로 아첨했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70인역(LXX)은 이를 '혀를 유창하게 만든다'고 의역하였고, 본문의 원어도 이와 똑같이 인용되어 있다(Lenski).

 

'속임을 베풀며'의 헬라어는 계속해서 속이고 사람을 죽이는 혀의 특성을 보여준다.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곧 온전한 사람이다.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그렇지만 타락한 인간의 입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타인을 살리는 말이 나올 수 없고 오히려 죽이는 독이 가득할 뿐이다.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은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지 못함과 같고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3: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 본절은 시 10:7의 의미를 요약하여 인용한 것이다.

 

(10:7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저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저주가 자기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109:17-19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18)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19) 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몇몇 주석가들은 저주와 악독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설명하고자 한다.

즉 저주하는 주체인 가해자와 악독을 당하는 피해자로 구분한다(Hendriksen).

 

그러나 본절에서 바울은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온갖 더러운 것을 대표적으로 '저주와 악독'이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본 구절이 인간의 전적 타락을 뒷받침해 주는 시구이고(Harrison), 문맥상 강조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그 발은 - 본문은 잠 1:16의 앞 부분과 동일하지만,

 

(1:16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다음 구절(16, 17)이 사 59:7, 8의 인용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59:7-8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59:7 상반절을 요약하여 인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은 12절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선포한 후에 13절과 14절에서는 ''에서 비롯되는 악행을 설명했으며, 본절에서는 직접적인 행동을 통한 악행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입의 말과 악행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와 같이 타락하여 부패해진 자연인의 마음에서는 어떠한 ''도 나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만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갈 수 있다.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 피를 흘린다는 것은 악행에 대한 결과를 의미한다.

 

'' (하이마)는 성경에서 '생명의 원천',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또는 '생명의 좌소를 의미하는데,'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본절에서는 '쏟아 버리다', '피를 쏟아내다' 등의 의미를 가진 동사 '에크케오'의 단순 과거 부정사 '에크케아이'와 함께 쓰여 '생명에 대한 위협이나 도발'의 의미로 쓰여졌다.

 

한편 '빠른지라'로 번역된 분사 '와세이스'는 신약성경에서 '날카로운', '예리한' 등의 의미로 쓰였으며,

 

(1: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9: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본절에서만 '빠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70인역에서는 '빠르다'를 뜻하는 헬라어 '타키노스'를 사용하고 있다. 바울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다른 단어 '와세이스'를 쓴 것 같다.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파멸과 고생 - 직접적으로 영혼과 관련된 것이다.

혹자는 이 표현을 인간의 지독한 잔인성에 대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Calvin),

이미 2:9에서 바울은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라고 선포한 적이 있다.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환난과 곤고''파멸과 고생'은 모두 영혼이 지옥의 형벌 가운데 있을 때 나타날 상황에 대한 표현이다.

 

 

그 길에 있어 -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들의 길에 파멸과 고생이 있다'라는 뜻이 된다.

 

본절은 앞절의 결론으로서 피흘리는데 빠른 발을 가진 '그들의 길에'(엔 타이스 호도이스 아우톤) 파멸과 고생이 결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인류의 잔혹한 피 흘림은 그들의 행위로 인하여 결국 그보다 더 비참하고 고통스런 파멸(破滅)을 초래하게 된다.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 혹자는 '평강의 길'을 현실적인 평화 내지 이웃과의 화목으로 해석한다(Matthew Henry).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내적인 평강이라 해석될 수도 있다.

예수께서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인간들에게 평강을 주시리라는 약속이

 

(2:9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성취되었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이 평강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됨으로 말미암아 현재 성도들에게도 주어질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서 주어진다.

 

이 길은

(1)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며, 동시에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 모든 사람들과 함께 화평을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길이다.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딤후 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또한

(3)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이 가야 할 길과는 대조를 이루는 길로서 성도들의 종말론적인 구원을 동시에 나타내는 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떠난 인간은 결코 이 길을 찾을 수도 없으며 또한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안을 얻을 수도 없다.

 

 

 

[3:18]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

 

본절은 시 36:1 하반절의 직접적인 인용이다.

 

(36:1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마음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11절에서 17절까지의 인용 구절들에 언급된 부패상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어리석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머레이(Murray)는 본절을 보다 자세히 해석하기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평가의 중심부에서 제외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계산 속에서도 사라지고 말았음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아무튼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며 사랑하는 것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가르치고 있으며,

 

(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4: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24: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50: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그러한 자가 받을 축복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다.

 

(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103: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7: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