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거듭난 삶 2024. 6. 3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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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2

 

성 경: [3:23-26]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의에 대한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고 그 의로 옷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20)는 말씀과 동일한 의미로 다시 반복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머레이(Murray)는 이에 대한 견해를 네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 것. 칼빈(Calvin)이 이 견해를 취한다.

그리고 밤비(Barmby)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후 4: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8:19 이뿐 아니라 저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우리의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살전 2:6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4: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16: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2)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영광, 존귀, 또는 칭찬을 받지 못한 것. 렌스키(Lenski)가 이 견해를 주장한다.

 

(5:41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8:50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3:3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후 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3)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지 못한 것. 헨드릭슨(Hendriksen)이 이 견해를 지지한다.

하나님의 형상에 일치된 삶을 살지 못한 것으로 이해한다.

 

(고전 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4)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눠질 완성된 영광을 지니지 못한 것. 리델보스(Ridderbos)가 이 견해에 동의한다.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고전 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고후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살후 2: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딤후 2: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2: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벧전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그런데 본 구절은 ''와 매우 밀접한 구절이므로,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부여해 주신 영광스러운 지위를 상실한 것과 관계가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형상도 포함될 수 있고(Black), 만물에 대한 지배권도 포함될 수 있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표현을 바울이 엡 1장에서 주로 사용한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1장에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영적 연합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며, 본 구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사실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 '하나님의 은혜'란 말이나 '값없이'란 말을 내용상 차이점이 없다.

 

다만 '값없이'란 말이 부가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드러나며, 또한 '구속'이란 말이 '속전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는 것'과 관계되어 있기에 강조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이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행위임이 부각된다.

 

따라서 '값없이'란 말은 엡 2:8에 언급된 '하나님의 선물'이란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한편 23절과 본 구절을 합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결국 구원받게 된다는 보편 구원론적인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22절에서 '하나님의 의''믿는 자'에게 효력(效力)이 있다고 한 바울의 선포가 본 구절에 이미 포함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 '의롭게 된다'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값 없이'라는 단어에 의하여 제한을 받고 있는 바,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한편 본절의 분사적 의미는 22절에 기록된 현재 분사 '투스 피스튜온타스'('믿는 자들을')와 연결되어 있다.

 

후자는 '믿는 자'라는 능동적 의미를 시사한 반면, 전자는 '의롭다 함을 받은 자'라는 수동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바울은 수동형과 능동형을 사용하여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신의 어떠한 행위로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은혜와, 그에 대한 인간의 제한적 의지를 대조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한 구원의 영광을 부각시키고 있다.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의 피 - '''생명'을 상징한다.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피를 흘리심은 자기 생명을 속전으로 바쳐 희생시키셨음을 의미한다.

 

 

화목 제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힐라스테리온'인데, 이 단어의 번역에 따라 견해 차이가 생긴다.

 

(1) 속죄 제물(expiation)을 의미한다는 견해.

 

'힐라스테리온'이 히 9:5에서는 지성소에 있는 '속죄소' 혹은 '시은좌'(mercy seat)를 의미한다.

 

(9: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그러므로 '힐라스테리온'은 지성소에서 행해지는 '온 백성을 위한 속죄' 행위를 강조한다.

그리고 본절에서 희생의 ''가 언급되어 있으므로 '속죄 제물'로 번역되어야 한다(Lenski, Barmby).

 

(2) 화목 제물(Propitiation).

 

바울은 이미 앞에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언급을 했으며,

 

(5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본 구절에서도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힐라스테리온'은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속죄뿐 아니라 백성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제사를 드린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24절에서 이미 '구속'에 대한 언급을 했으므로 속죄에 대한 것을 계속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본절은 '속죄'보다는 '화목'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Calvin, Murray, Lloyd-Jones, Matthew Henry, Leon Morris, Deissmann, Harrison).

벌게이트(vulgate) 역본, KJV등이 이 견해를 따라 번역했다.

 

이 두 가지의 견해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으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문자적으로 '힐라스테리온'의 의미를 밝혀야겠지만, 신약성경 가운데 이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해결될 가능성은 없다.

 

다만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받아들여 '힐라스테리온''구속'과 함께 '화목'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피는 일차적으로 '속죄'와 관련되어 있지만, 그 속죄의 결과는 인간과 하나님간의 '화목'으로 나아간다.

 

그런 이유로 '힐라스테리온''속죄 제물''화목 제물'의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헨드릭슨(Hendriksen)이나 어드만(Erdmann) 같은 학자도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인정한다.

 

 

세우셨으니 - 이는 '계획을 도모하다', '제출하다', '앞에 두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본절에서는 '의도하다'란 의미가 적절하다.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신 것'은 결코 하나님의 불의하심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알지 못하던 시대에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런 의미에서 '간과'(看過)는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의 인내로 말미암아 죄의 가리움을 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곧 이 때에 - 정해진 때를 의미하는데 이 때는 종말론적인 시기, 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실현하시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본 구절에서는 하나님의 관용으로 인간의 죄를 간과하셨던 시기와 대조를 이루는 때로서 지금 믿는 자들에게 현재적인 칭의를 제공하는 때를 의미한다.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 바울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변호를 하고 있다. 인간의 죄를 간과하시는 것이 오해되어 하나님의 공의에 손상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를 간과하시고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독생자를 속죄 제물과 화목 제물로 삼으사 그에게 하나님의 공의에 따른 진노와 저주를 담당케 하신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처사는 여전히 공의로우시며 그의 공의로운 처사를 따르는 자들도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믿는 자를 의롭다하려 하심 - 본 구절에서 ''를 뜻하는 '디카이오스'는 서로 다른 형태로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맨 마지막에 사용된 '디카이운타'는 서로 다른 형태로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맨 마지막에 사용된 '디카이운타'는 앞에 있는 두 의로움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다.

 

요한은 '디카이오스'를 심판과 구원의 개념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우리 죄를 사하신다고 말하고 있으나,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또 다른 두 가지 의미에서 해석한다.

 

(1) 바울은 죄인들의 행악을 당장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오랜 세월 동안 간과하신 하나님의 인내를 의의 개념으로 해석하며

 

(2) 또한 절대적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속에 드러낸 하나님의 의를 설명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자기 안의 의로움을 인하여 참으시기도 하셨으며 또한 죄인의 의로움을 위하여 희생적 죽음을 원하셨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으므로 대속적 죽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전가(轉嫁)되는 사건, 곧 의롭다고 간주하는 신분의 변화가 현재적인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울은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피흘림에 동참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