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거듭난 삶 2024. 11. 20.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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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찬송 2

 

성 경: [2:8-14]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다윗의 동네 - 메시야는 다윗의 동네, 곧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 예언되었다.

 

여기서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메시야의 오심과 관련된 모든 약속들을 기억나게 하고 그와 관련된 예언의 성취를 암시하기 위함이다.

 

구주(救主) - 헬라어 '소테르'는 신약 성경에서 드물게 나타나며 그것도 누가와 바울에 의해서만 주로 사용된 표현이다.

 

(5: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이는 하나님을 구원자로 표현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바,

 

(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삼하 22:3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예수께서 죄악에 찌들은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임을 뜻한다.

 

그리스도 주 - '그리스도'는 마 1:1 주석에서 설명된 바처럼 인류 구속의 대사명과 관련되는 주님의 직능적 명칭이며,

 

''(, 퀴리오스)는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한다.

 

예수는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와 주로 예정되었으며,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본체상으로는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며,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자기 백성들을 위한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신 것이다.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는 긴 옷감으로 아기를 포근히 감싸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 태어난 아기를 따뜻하게 하고 병으로부터 보호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기 예수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여있다는 것은 특별한 표적이라고 언급된다.

 

그것은 다음 세 가지 면에서 표적이 되었다.

 

(1)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언한 시기의 장소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2) 그들에게 전달된 기쁜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3)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로서의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지극히 비천한 자리에까지 낮아지셨다.

 

한편 겔 16:1-5에는

예루살렘이 이방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불쌍한 아기로 묘사되었거니와,

 

(16:1-5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4)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5)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예수는 이와 같은 가련한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과

나아가 온 인류를 구원하고 돌보시기 위해

스스로 비천한 자리(구유)에 누이셨던 것이다.

 

 

[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 두 세 사람의

증거로도 어떤 사실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었거니와

 

(18: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여기서는 수많은 천군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고 있다.

 

'천군'에 해당하는 '스트라티아'

구약 성경에서 종종 천체(henvenly bodies)를 가리키나,

 

(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여기서는 일군(一群)의 천사들을 가리킨다.

 

(103:21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 이 이야기에서 절정을 이루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의 등장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는,

 

 

(1)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하고 또한 그를 통해 확연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를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2)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과 경배로써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3) 그리고 하나님이 그 영원하신 섭리에 따라 인생과 세상 만물을 향해 이루고자하신 계획을 그리스도를 통해 완수하시게 되기 때문이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그리스도의 오심이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인 것은,

 

(1) 그리스도의 중재와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막혔던 장벽이 제거되고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있으므로 늘 불화의 다툼의 수렁에서 허덕이지만, 하나님과의 근본적 화해를 이룬 사람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평강을 선물로 소유하게 된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죄악이 제거되고 사람들 간에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16-18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언급된 평화는 메시아의 도래와 관련된 총체적 축복과 구원을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예수는 평강의 왕으로서,

 

(7: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당신의 공생애를 백성들의 평강을 위해 보내셨으며,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그 평강을 위한 사역은 십자가상에서 절정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