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거듭난 삶 2024. 11. 2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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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들의 경배

 

성 경: [2:15-20]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2: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하늘로 올라가니 - 누가는 천사들이 단순히 사라졌다고 언급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한다.

 

이는 공간적인 이동을 자세히 묘사한 누가의 독특한 표현이다.

 

(24: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물론 우리는 본 구절을 문자적인 의미로만 해석하여 수직 상승의 뜻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의 처소, 곧 하늘나라는 이 우주속의 그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의 승천 장면에 대한 묘사와 마찬가지로,

지각 가능 상태로부터 지각 초월 상태에로 변화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라 하겠다.

 

이제() - 강조를 위한 접두사로서 특히 명령형 문장과 더불어 사용되며 여기서는 긴급성을 강조한다.

 

 

[2: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빨리 가서 -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 후, 엘리사벳을 찾아 나선 장면을 연상시킨다.

 

(1: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목자들은 자신들이 돌보던 양 떼를 두고 마리아처럼 서둘러 찾아 나선다.

목자들이 양 떼를 다른 동료 목자들에게 맡기고 갔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보존에 맡겼는지 알 수가 없으나 아무튼 목자들은 즉각적(卽刻的)인 반응을 보여주고 아기 예수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양 떼를 뒤로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에는 결단이 요구된다.

우리도 목자들과 같이 순수한 믿음과 겸손하고 완전한 섬김으로써 주를 찾을 때에 주께서는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인도자 되신다.

 

찾아서(아뉴란) - 원어상으로 '끊임없이'(부지런히) 탐색하여 찾다'라는 뜻이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계속해서 찾아다녔으며, 그렇게 노력하여 찾던 끝에 정말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평강의 왕 아기 예수를 발견한 것을 말한다.

 

 

[2: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었던 이 목자들이 최초로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었고 또 최초로 복음을 전달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목자들이 그 아기에 관한 기쁜 소식을 누구에게 전해 주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 외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마굿간에 모여 있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고, 목자들이 이웃 사람들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전했다고도 짐작된다.

 

 

[2: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놀랍게 여기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우마조''이상히 여기다', '놀라다'는 뜻 외에 '찬양하다'는 뜻도 내포한다.

즉 이 말은 초자연적인 혹은 신적인 사건과 접한 자의 외경스러운 감동을 시사한다.

 

누가는 메시아에 대하여 선포하는 말을 들었던 이들이 그 말을 기이하게 생각했다고 여러 번 언급하고 있는데 본 구절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마리아와 요셉도 시므온이 예수께 대하여 하는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겼으며,

 

(33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47절에 보면 성전에서 답변하는 어린 예수의 말을 들었던 모든 이들이 예수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

 

(47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또한 나사렛의 회당에서 예수가 사 61장의 어떤 부분을 읽고 나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곳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

 

(4: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8: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9: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11: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20: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24: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외에도 사람들이 위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 것을 설명해 주는 여러가지 어휘가 사용되었다.

 

(4: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5: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사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충만히 거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기이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새기어 생각하니라 - '새기어''보호하다',(기억으로) '간직하다'의 뜻이며, '숙고하다', '생각하다', '만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서 마리아는, 사건 전반을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로 계속해서 생각하여 그 의미를 되새겼음을 알 수 있다.

 

예수 탄생을 전후하여 천사로부터 전해진 메시지들이나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사실 등은 마리아로 하여금 아기 예수의 신분과 사명에 대해 거듭 상고해 보게끔 하였을 것임에 분명하다.

 

 

[2: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

 

'하나님께'라는 목적어를 받는 '영광을 돌리다'(돝사조)라는 표현이 누가복음에 자주 쓰인다.

 

(5: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3;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18: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그리고 본 구절에서와 같이 어떤 이야기가 찬양으로 끝맺는 것은 누가복음의 특징 중 하나이다.

 

(24: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목자들은 그들이 천사들로 부터 들은 바와 실제로 본 것이 똑같음을 알고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린다.

 

사실 아기의 탄생 자체는 평범한 보통의 사건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기 예수는 그 비슷한 시간에 태어난 많은 아기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는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성육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