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 받으신 예수
성 경: [눅 3:21]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눅 3:21]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 예수는 12살 때 예루살렘에 와서 랍비들과 변론한 후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가 성장 기간을 보내셨으며,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그 후 착실히 성장하여 마침내 공생애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침례 요한이 물러가고 예수께서 나타나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예수가 침례를 받으신 것은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죄인은 아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따라서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심은 회개할 것이 있는 죄인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예수는 자신이 구원할 사람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마 3:15에서 예수는 자신이 침례를 받으므로,
'모든 의(義)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며 침례를 받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편 마샬(marshall)은,
'백성들이 다 침례를 받을 새' 예수께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요한의 활동이 절정에 달한 것을 나타낸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침례가 요한의 사역의 정점에 위치하였다는 뜻이다.
▶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 누가는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나서 기도를 했다고 언급한다.
이는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예수의 첫 번째 기도 모습이다.
(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9: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22: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예수는 일생 동안 기도의 삶을 사셨다.
그의 혼신을 다하는 기도는 하늘을 열리게 한다.
마가의 경우는 누가보다 하늘이 열렸다는 사건을 훨씬 더 생생하게 기술한다.
(막 1: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이 열렸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제 곧 계시나 말씀을 주시려고 한다는 상황적 암시를 나타내며, 하나님께서 오랜 침묵의 기간을 깨시고 다시금 그의 능력과 권위를 행사하시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이는 예수께서 본래 하늘에 계시던 분이며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암시한다.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눅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 성령이 비둘기 같은 -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여러가지 모습으로 현현(顯現)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출 24:10-11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신 5:4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그러나 이곳에서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강림했다고 전한다.
누가는 성령이 임할 때 오직 예수만이 그것을 의식했고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였다는 식의 별다른 보도를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아마도 그곳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성령 강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비둘기 같은 형체가 내려오는 것만을 보았을 것이다.
한편 '비둘기'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학자간에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온유하고 평화스런 속성을 나타낸다고 봄이 무난할 것이다.
한편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여러 가지 모습과 그 의미를 아래와 같이 살펴본다.
불 - 신자의 삶에서 죄를 소멸시키며 성결케 하는 능력,
(사 6:1-7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또 내가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왕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
2) 그것 위에는 스랍들이 저마다 여섯 날개를 가진 채 서 있더라. 그가 두 날개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며 두 날개로는 날더라.
3)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크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그 외치는 자의 음성으로 인해 문기둥들이 흔들리며 그 집이 연기로 가득하게 되니라.
5)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므로 망하게 되었나니 내 눈이 왕 곧 만군의 주를 보았도다, 하였더라.
6) 그때에 스랍들 중에서 하나가 부집게로 제단에서 불타는 숯을 취해 손에 들고 내게로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술에 닿았으니 네 불법이 제거되고 네 죄가 깨끗하게 되었느니라, 하더라;
행 2:3 또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앉더라)
바람 - 깊이 감추어져 있으나 강력하며 중생케하는 힘,
(요 3:8 바람이 마음대로 불매 네가 그것의 소리는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 하시니라)
비둘기 - 온유하고 부드러우며 평화스런 속성,
(막 1:10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들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시더라)
물 - 영적인 삶을 충만하게 넘치도록 채우시는 힘,
(요 7:37-39 마지막 날 곧 명절의 그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
39) (그러나 이것은 그분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더라.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아직 성령님께서 주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인침 - 신자를 당신의 것으로 소유하셔서 완전하게 영원한 교호(交互)를 약속하심,
(엡 1:13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기름 - 사역을 위해 부여되는 능력.
(행 10: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께 성령님과 권능으로 기름을 부으시매 그분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하셨기 때문이라)
한편 이러한 성령 임재는 구약의 예언대로 하나님이 그의 종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리라 하신 약속과,
(사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성령이 그 새로이 생겨난 가지에 임할 것이란 예언을 성취 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사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또한 예수가 하늘나라의 일을 위하여 위임을 받고 그 일을 시작하기 이전의 준비 절차로 왕, 제사장, 선지자로서 기름 부음을 받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 하늘로부터의 음성은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직접적으로 공표하신 말씀이다.
'사랑하는'을 나타내는 헬라어 '아가페토스'는 '사랑하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나 '아듸'이나 '딸'을 붙여 사용할 때는 '외아들', '외동딸'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여기서 '아가페토스'는 예수가 유일한 아들, 즉 독생자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한편 이 구절은 변화 산에서 들려진 음성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을 포함하고 있다.
(사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 천사들과,
(욥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2:1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이스라엘 국가와 이스라엘의 왕들에 적용시켰었다.
(출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삼하 7: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호 11: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그러나 점차로 그 말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예수가 성령에 의해서 잉태될 것이라는 천사의 수태고지(受胎告知)에서도,
(1: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예수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또한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말은 하나님과 예수의 유일무이하고도 특별한 인격적 관계를 나타낸다.
요컨대, 예수께서 받으신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공동 사역이라 할 수 있었다.
즉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심으로 인간의 구원을 향한 공생애를 시작하고,
성령도 성자(聖子)가 그 일을 감당하도록 협동하여 힘을 공급해 주시며,
성부(聖父)도 그 일을 시작한 아들에게 하늘을 열고 땅을 향해 기쁨과 승인의 음성을 발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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