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거듭난 삶 2021. 8. 1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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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 이송(移送)

 

성 경: [삼하 6:1-2]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삼만을 다시 모으고

2) 일어나서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삼하 6: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삼만을 다시 모으고

 

뺀 무리 삼만 - 같은 내용을 기록한 대상 13:1-5에 의하면

'뺀 무리 삼만'은 틀림없이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골고루 뽑은 자들일 것이다(Keil).

 

(대상 13:1-5 다윗이 천인 대장들과 백인 대장들과 모든 지도자들과 의논하고

2) 다윗이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그 일이 주 우리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들과 또 그들과 함께 그들의 도시와 주변 지역에 거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널리 보내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다시 옮겨오자. 사울 시대에는 우리가 그 궤 앞에서 여쭙지 아니하였노라, 하매

4) 그 일이 온 백성의 눈에 옳게 보이므로 온 회중이 자기들이 그대로 행하겠다고 말하매

5) 이에 다윗이 기럇여아림에서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려고 이집트의 시홀에서부터 하맛의 입구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을 함께 모았더라)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올려 오기 위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의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대상 13:5 이에 다윗이 기럇여아림에서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려고 이집트의 시홀에서부터 하맛의 입구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을 함께 모았더라)

 

여기서 '온 이스라엘'이란 곧 이스라엘 전체에서

골고루 뽑은 수행자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런데 이 '뺀 무리 삼만'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다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한 일종의 군사들이었을 것이다.

(Keil & Delitzsch, Lange, Pulpit Commentary).

 

왜냐하면 당시 법궤가 안치되어 있었던 바알레유다(2)

블레셋 지경(地境)에서 가까웠으므로 그들의

기습 공격에 대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작은 법궤 하나를 운반하기 위해서

삼만이란 대군을 동원하였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며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 혹자의 견해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The Interpreter's Bible).

 

이와 관련 70인역(LXX)은 본 구절의 3만이란 수를

7만으로 기록하고 있음도 기억하라.

한편, 이처럼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기 위해

이스라엘 전역에서 골고루 수행자들을 뽑은 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법궤에 대한 온 국민적 관심을 회복시켜

여호와 신앙의 부흥을 꾀하기 위함이다.

각 지파간의 유대감을 조성하며 통일 왕국의 결속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다시 모으고 - 이 말은 이번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체 총회는

지난번 다윗의 즉위식 때 35만명이나 모였던

총회에 이은 제 2차 총회임을 보여 준다.

 

(5:1-3 그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2) 또한 지나간 때 곧 사울이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나가게 하고 들어오게 하신 이는 왕이었고 주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며 이스라엘의 대장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주 앞에서 그들과 동맹을 맺으니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니라;

 

대상 12:23-40 싸움을 위해 무장하고 예비한 채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주의 말씀대로 사울의 왕국을 그에게 돌리려 한 무리들의 수는 이러하니라.

24) 방패와 창을 들고 싸움을 위해 무장하고 예비한 유다 자손이 육천팔백 명이요,

25) 시므온 자손 중에서 싸움을 하는 강한 용사가 칠천백 명이요,

26) 레위 자손 중에서 사천육백 명이요,

27) 여호야다는 아론 족속의 지도자였으며 그와 함께한 자가 삼천칠백 명이요,

28) 또 젊은 용사 사독과 그의 아버지 집의 대장이 이십이 명이요,

29) 베냐민 자손 곧 사울의 친족은 아직도 그들의 대다수가 사울의 집 직무를 지켰으므로 그 중에서 나아온 자가 삼천 명이요,

30) 에브라임 자손 중에서는 그들의 조상들의 집에서 두루 유명한 강한 용사가 이만 팔백 명이요,

31)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지명을 받아 와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 한 자가 만 팔천 명이요,

32) 잇사갈 자손 중에서 때를 깨닫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는 자들 곧 그들의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었더라. 그들의 모든 형제들이 그들의 명령을 따랐더라.

33) 스불론 중에서 싸움에 필요한 모든 기구를 가지고 전투대형을 취할 줄 알며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전쟁에 나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 명이요,

34) 납달리 중에서 대장 천 명과 또 방패와 창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한 자가 삼만 칠천 명이요,

35) 단 족속 중에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이만 팔천육백 명이요,

36) 아셀 중에서 전쟁에 나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사만 명이요,

37) 요르단 저편의 르우벤 족속과 갓 족속과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싸움에 필요한 온갖 전쟁 기구를 지고 전쟁에 나가는 자가 십이만 명이었더라.

38) 전투대형을 취할 줄 아는 이 모든 군사들이 완전한 마음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려 하였더라. 이스라엘의 남은 모든 자들도 한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으려 하여

39) 그들이 거기서 다윗과 함께 사흘을 지내며 먹고 마셨으니 이는 그들의 형제들이 이미 그들을 위하여 예비하였기 때문이더라.

40) 또한 그들에게 가까이 있던 자들 곧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이르기까지의 사람들이 나귀와 낙타와 노새와 소에 빵을 실어 오고 또 음식과 가루와 무화과 덩이와 건포도 송이와 포도즙과 기름과 소와 양도 많이 가져왔으니 이는 이스라엘 안에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더라)

 

 

 

[삼하 6:2] 일어나서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바알레유다 - 혹자는 '바알레유다'(Baale of Judah)

'유다의 방백들', '유다 백성들'로 해석하였다.

(LXX, Vulgate, Luther, J. W. Wevers).

 

그러나 이 해석은 구문법상(構文法上) 옳지 않다.

왜냐하면 한 문장 안에 지명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

'거기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은 '거기서'가 지시하는 지명을 의미하며,

혹자들이 해석한 대로 일반명사는 아니다.

 

한편, 바알레유다는 '숲의 성읍'이란 뜻의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의 옛 명칭이다.

이곳은 본래 기브온 사람들의 도시였으며

'바알라'(Baalah)로 불리웠다.

 

(15:9 또 그 경계가 이 산의 꼭대기에서부터 넵도아의 물 샘에까지 이르러 에브론 산의 도시들에까지 나아가고 또 바알라 곧 기럇여아림에 이르며;

 

대상 13:5-6 이에 다윗이 기럇여아림에서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려고 이집트의 시홀에서부터 하맛의 입구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을 함께 모았더라.

(대상 13:6)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으로 올라가서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주 하나님의 궤를 거기서 가져오려 하였는데 그들이 그분의 이름을 그 궤 위에서 부르느니라).

 

그 후 이곳이 유다 지파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자

'유다의 바알라'(Baalah of Judah),

곧 바알레유다로 불려지게된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가는 길목,

곧 예루살렘 서쪽 15km 지점에 위치했었다.

 

한편, 하나님의 언약궤는 이제 다윗에 의하여

온 이스라엘의 관심이 집중되기 전까지 이곳에

70년 이상 동안 머물러 있었다.

(B.C. 1075-B.C. 1003, 이 기간은 아벡 전투 때부터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때까지의 기간이다) (Leon Wood)

 

(삼상 7:1-2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주의 궤를 가져다가 산에 있던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주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라.

2) 그 궤가 기럇여아림에 거하되 그 기간이 길어 이십 년이 되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온 집이 주를 구하며 통곡하니라).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

이 구절은 매우 난해한 구절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 문구,

'아론 하엘로힘 아쉐르 니크라 쉠 솽 여호와 체바오트 이쉐브 하케루빔알라우'

직역하면,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그 이름이 그 위에서 불리워지는 하나님의 언약궤'이다.

 

여기에서 해석상 중요한 낱말은 '그 위에서'이다

(우리말 성경에는 '사이에'로 번역되었음).

 

과연 '그 위에서'는 어디를 의미하는 걸까?

 

(1) 혹자는 '그 위에서''그룹 위에서'로 해석한다(Cleri-cus).

이 경우 본 구절은 '그룹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 해석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룹 사이에' 계시기 때문이다.

 

(삼상 4:4 이에 백성이 사람을 실로에 보내었으니 이것은 그들이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만군의 주의 언약 궤를 거기서 가져오고자 함이더라.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언약 궤와 함께 거기 있더라).

 

(2)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위에서'를 바로 '하나님의 언약궤 위'로 해석한다.

(Keil,Lange, The Interpreter;s Bible).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하나님의 언약궤, 바로 그 위에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그 이름이 불리워진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 당신 자신에 대한 계시(啓示)이며

그의 능력과 속성에 대한 표현이며, 그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다.

 

(3:7-15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고난을 분명히 보았고 또 그들이 그들의 작업 감독들로 인하여 부르짖는 것을 들었나니 내가 그들의 고통을 아노라.

8) 내가 그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데리고 올라와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처소로 이끌려고 내려왔노라.

9) 그러므로 이제, 보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이르렀고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며 학대하는 것도 내가 보았나니

10) 그런즉 이제 오라.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보내리니 이로써 네가 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가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파라오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가리이까? 하매

12)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네가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간 뒤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곧 내가 너를 보낸 증표가 되리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보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면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매

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스스로 계신 이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15) 하나님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너희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이것은 영원토록 나의 이름이요, 이것은 모든 세대에 이르는 나의 기념물이니라)

 

따라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언약궤 위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존재,

그분의 능력, 그분의 성품, 그분의 영광이 임재하여 있다는 말이 된다.

 

, 하나님의 언약궤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가견적 보좌(寶座)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하나님의 궤를 '주의 권능의 궤'라고 한 표현과 일치한다.

 

(132:8 오 주여, 일어나사 주의 능력의 궤와 함께 주의 안식처로 들어가소서).

 

따라서 이 해석은 비교적 타당성을 갖는다 하겠다.

한편, 다윗이 이와같이 하나님의 가견적 보좌인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려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신정왕국(神政王國)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Ce Graaf).

 

 

그룹들 - '그룹'(cherub)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천사의 일단(一團)이다.

이들의 전체 수효가 얼마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그들의 직무에 대해서는 성경에 비교적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즉 이들은 창세 초(創世初)에 아담이 쫓겨난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를 지켰으며

 

(3:22-24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가운데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하시고

23) 그런 까닭에 주 하나님께서 에덴의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사 그를 땅에서 취하였으므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께서 그 남자를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도는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좌 병거를 끄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1:20 그 영이 어디로 가고자 하든지 그것들도 자기들의 영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갔고 그 바퀴들도 그들을 마주하여 들렸으니 이는 살아 있는 창조물의 영이 바퀴들 안에 있었기 때문이더라).

 

그러나 이들의 형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다.

다만 성경 곳곳의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1;10 이제 제삼십년 사월 곧 그 달 오일 내가 그발 강가에서 포로들 가운데 있을 때에 하늘들이 열리며 하나님의 환상들이 내게 보이니라.

2) 여호야긴 왕이 포로가 된 지 오 년이 되던 해 그 달 오일에

3) 갈대아 사람들의 땅에 있는 그발 강가에서 주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였고 거기서 주의 손이 그 위에 있더라.

4) 내가 보니, 보라, 북쪽에서 회오리바람과 큰 구름과 스스로를 감싸고 있는 불이 왔는데 그것의 주변에 광채가 있었으며 그것의 한가운데 곧 그 불의 한가운데로부터 호박색을 띤 것 같은 것이 나오고

5) 또 그것의 한가운데로부터 살아 있는 네 창조물의 모습이 나오더라.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곧 그들이 사람의 모습을 가졌더라.

6) 그들이 각각 네 얼굴을 가졌고 각각 네 날개를 가졌더라.

7) 그들의 발은 곧은 발이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더라. 그들이 빛나는 놋 같은 색깔로 빛을 내더라.

8) 또 그들이 그들의 네 측면에 있는 그들의 날개들 밑에 사람의 손들을 가지고 있더라. 그들 넷이 얼굴과 날개를 가졌는데

9) 그들의 날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더라. 그들이 갈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며 각각 앞으로 곧게 나아가더라.

10) 그들의 얼굴 모습으로 말하건대 그들 넷이 사람의 얼굴과 오른쪽으로 사자의 얼굴을 가졌으며 또 왼쪽으로 소의 얼굴을 가졌고 또 독수리의 얼굴을 가졌더라;

 

4:6-8 그 왕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왕좌 한가운데와 왕좌 둘레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한 네 짐승이 있더라.

7) 첫째 짐승은 사자 같고 둘째 짐승은 송아지 같으며 셋째 짐승은 사람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 짐승은 날아다니는 독수리 같더라.

8) 네 짐승이 저마다 자기 둘레에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것들의 안쪽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것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그분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 오실 이시로다, 하고)

 

그들은 날개를 지녔으며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25:18-19 너는 긍휼의 자리 양 끝에 금으로 그룹 두 개를 만들되 두들겨서 그것들을 만들고

19) 한 그룹은 이쪽 끝에 다른 그룹은 저쪽 끝에 만들지니라. 너희는 긍휼의 자리 양 끝에 그것의 그룹들을 만들지니라)

 

 

만군의 여호와 - - 이에 해당하는 '야웨 엘로헤 체바오트

'천군천사(天軍天使)의 하나님 여호와'로도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체바오트'의 기본형 '체바아'는 본래

'군대', '무리'란 뜻으로,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거느리고 계시는

수많은 하늘 군대인 천사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33:23 만일 천명 가운데 하나 곧 해석하는 자요 그와 함께하는 사자(使者)가 있어서 사람에게 그의 곧바른 길을 보일진대;

 

9:6 주 곧 주는 홀로 주시니 주께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와 땅과 그 안의 모든 것과 바다들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다 보존하시오매 하늘의 군대가 주께 경배하나이다;

 

103:21 그분의 모든 무리들아,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그분의 섬기는 자들아, 너희는 주를 찬송하라;

 

10:27 내가 어둠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는 것을 너희는 빛 가운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라;

 

12:22 오직 너희는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시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들의 무리와)

 

아무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신명(神名)으로서,

약칭으로 '야웨 체바오트'로 종종 표기된다.

 

(6:2 다윗이 일어나 유다의 바알레에서 나와 자기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려 하였는데 그 궤의 이름은 그룹들 사이에 거하는 만군의 주의 이름으로 불리느니라;

 

삼상 15:2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그가 길에서 숨어 그를 기다린 일을 내가 기억하나니;

 

왕하 3:14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서서 섬기는 만군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앞에 있음을 고려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분명히 왕 쪽을 보지도 아니하고 왕을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대상 17:24 그 일을 굳게 세우시고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영원토록 크게 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시라, 하게 하옵시며 또한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24:10 누가 영광의 왕이시냐? 만군의 주 곧 그분께서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1:9 만군의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아주 소수의 남은 자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같이 되고 고모라같이 되었으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