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거듭난 삶 2021. 8. 18.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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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스 웃사 사건

 

성 경: [삼하 6:6-7]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삼하 6:6]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나곤의 타작마당 - 이에 대해 대상 13:9에서는

'기돈의 타작 마당'(the threshing floor of Chidon)이라고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 이 두 기록의 차이를 원문 파손으로 인한 두 저자의 실수로 보는 견해이다.

(The Interpreter's Bible).

 

(2) '기돈'(Chidon)을 타작 마당의 주인 이름으로 보고

'나곤'(Nachon)을 타작 마당의 수식어로 보는 해석이다.

 

, 나곤이란 말의 의미는 '예비된'이란 뜻으로

나곤의 타작 마당은 곧 '기돈의 예비된 타작 마당'이라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나곤을 ''(예비된, 준비된)의 파생어로 본 데서 나온 견해이다.

 

(3) '나곤''예비된', 또는 '고정된'이란 수식어로 봄은 물론

'기돈' 역시 타작 마당을 수식하는 말로 보는 견해이다.

 

, '기돈''파괴', '재앙'이란 뜻을 지닌 단어이다.

따라서 이 견해는 '예비되었던 타작마당'은 하나님의 재앙이

웃사에게 내린 '재앙의 타작 마당'이었다고해석한다(Lange).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4) 세번째 견해와 같이 '기돈'을 사람의 이름으로 보지 않고

'재앙'으로 해석하긴 하나 '나곤''예비된' 또는 '고정된'이란 말로 보지 않고

'나카'(치다)의 분사로서 '충돌하는'이란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이다(Keil).

 

따라서 이 견해는 이 타작 마당을

'충돌의 타작 마당이며 재앙의 타작 마당'이라고 해석한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네 견해 중 어느 것이 가장 정확한 해석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중 (3)번이나 (4)번을 지지하는 것이 비교적 무난할 것이다.

 

왜냐하면 (1)번은 해설이 너무 부실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영감성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23:1-7 이제 이것은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하니라. 높이 일으켜진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이스라엘의 달콤한 시편 기자가 이르기를,

2) 주의 영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셨으며 그분의 말씀이 내 혀에 있었도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의로워야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다스릴지니라.

4) 그는 해가 돋을 때의 아침 햇살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으며 비가 온 뒤 맑게 비침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셨도다.

5) 비록 내 집이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지 아니할지라도 그분께서 나와 영존하는 언약을 맺으사 모든 것을 정비하시고 확실하게 하셨으니 그 까닭은 비록 그분께서 내 집이 자라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이것이 나의 모든 구원이요, 나의 모든 소원이기 때문이라.

6) 그러나 벨리알의 아들들은 다 내버릴 가시나무들 같으리니 이는 그것들을 손으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로다.

7) 다만 그것들을 만질 자는 반드시 쇠와 창 자루로 둘러싸여야 하리니 그것들이 같은 곳에서 철저히 불살라지리로다, 하니라)

 

 

그리고 (2)번은 본문의 문맥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3)번과 (4)번은 하나님이 웃사와 충돌하여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웃사에게 재앙이 임했다고 한 본문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상의 제() 견해에도 불구하고 '기돈''나곤'

또 다른 이름일 가능성 역시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소들이 뛰므로 - '뛴다'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트'

본래 '미끄러지다', '걸려 넘어질 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소들이 돌뿌리에 걸리거나

미끄러져 비틀거리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말이다.

(Keil & Delitzsch, PulpitCommentary).

 

그런데 이러한 소들의 실수는 앞서 블레셋 백성들이

암소 두 마리에 법궤를 실어 벧세메스로 운반했을 때에는

없었던 불길한 흉조(凶兆)였다.

 

(삼상 6:12 암소들이 벧세메스 길로 향하는 곧은길을 택하여 큰길을 따라 가더라. 그것들이 갈 때에 울면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사람들의 영주들은 그것들을 따라 벧세메스의 경계까지 가니라).

 

 

그러므로 이 일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지 아니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된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일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과거에 블레셋인들도 법궤를 수레에 실어 운반하긴 하였다.

그러나 블레셋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문외한(門外漢)이었기 때문에

저들의 행위는 묵인될 수 밖에 없었다.

 

(삼상 6:10-16 그 사람들이 그와 같이 하여 젖내는 암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수레에 묶고 그것들의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 주의 궤와 금 쥐들과 자기들의 종기들의 형상들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매

12) 암소들이 벧세메스 길로 향하는 곧은길을 택하여 큰길을 따라 가더라. 그것들이 갈 때에 울면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사람들의 영주들은 그것들을 따라 벧세메스의 경계까지 가니라.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수확하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것을 보므로 기뻐하더라.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이르러 섰는데 거기에 큰 돌이 있더라. 그들이 수레의 나무를 쪼개고 그 암소들을 번제 헌물로 주께 드리며

15) 레위 사람들은 주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던 금 보물이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그 큰 돌 위에 두매 바로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주께 번제 헌물을 드리고 희생물들을 희생시켜 드리니라.

16) 블레셋 사람들의 다섯 영주가 그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삼하 6: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웃사의 잘못함 - 웃사가 하나님의 궤에 손을 댄 것을 가리킨다.

 

(6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그런데 수레를 끄는 소들이 날뛰므로 흔들리는 법궤를 잡으려했던

웃사의 행위는 인간적으로 또는 상황 윤리적으로 볼 때에는 전혀 잘못이 없었다.

 

그러나 그 행위는 하나님 말씀에 의거할 때 엄연한 신성모독(神聖冒瀆) 행위였다.

 

(18:19-33 그때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르되, 이제 내가 달려가서 주께서 왕의 원수들에게 원수 갚은 소식을 왕에게 전하게 하소서, 하니

20) 요압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이 날에 소식을 전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지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으므로 이 날에는 네가 소식을 전하지 말지니라, 하고

21) 그때에 구시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고하라, 하매 구시가 요압에게 절하고 달려가니라.

22) 그때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아무쪼록 내가 또한 구시의 뒤를 따라 달려가게 하소서, 하매 요압이 이르되, 내 아들아, 네게는 예비된 소식이 없는데 어찌하여 네가 달려가려 하느냐? 하되

23) 그가 말하기를, 아무쪼록 내가 달려가게 하소서, 하므로 요압이 그에게 이르되, 달려가라, 하니 이에 아히마아스가 평야 길로 달려가서 구시를 앞지르니라.

24) 그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았더라. 파수꾼이 문 위 지붕으로 가서 성벽에 이르러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 것이 보이므로

25) 파수꾼이 외쳐 왕께 고하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느니라, 할 때에 그가 빨리 와서 가까이 다가오니라.

26) 파수꾼이 보니 다른 사람이 달려오므로 그가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다른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오느니라, 하매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거늘

27) 파수꾼이 이르되, 내 생각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하는 것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하는 것과 같으니이다, 하매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모두 평안하나이다,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르되, 주 왕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소이다. 그분께서 자신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주셨나이다, 하니

29) 왕이 이르되, 청년 압살롬이 무사하냐? 하매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곧 당신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큰 소동이 있음을 내가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30) 왕이 그에게 이르되, 옆으로 물러나 여기 서 있으라, 하매 그가 옆으로 물러나 서 있더라.

31) 보라, 구시가 와서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소식이 있나이다. 주께서 이 날 왕을 대적하여 일어난 모든 자들에게 왕의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매

32) 왕이 구시에게 묻되, 청년 압살롬은 무사하냐? 하니 구시가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들과 또 왕을 치려고 일어나 왕을 해하려 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33) 왕이 크게 격동하여 문 너머에 있던 방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이같이 말하기를, 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경 여러 군데에서 법궤의 신적 특성을

말씀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를 어겼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서는 레위 자손 중, 심지어 고핫 자손일지라도

법궤는 만지지 말라고 하셨다.

 

(4:15 진영이 앞으로 나아갈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것을 끝마치거든 고핫의 아들들이 와서 그것을 나를지니라. 그러나 그들이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지니 그들이 죽을까 염려하노라. 회중의 성막에 있는 이것들이 고핫의 아들들이 나를 짐이니라).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로서 거룩한 것이니

아무도 들여다 보지도 말라고 명하셨으며,

 

(4:20 그러나 그들은 거룩한 것들을 덮을 때에 들어가서 보지 말지니 그들이 죽을까 염려하노라;

 

삼상 6: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주의 궤를 들여다보았으므로 그분께서 그들을 치시되 곧 그분께서 백성 중에서 오만 칠십 명을 치시니라. 주께서 백성 중에서 많은 사람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법궤를 운반할 때에는 그것을 완전히 싸서

 

(4:15 진영이 앞으로 나아갈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것을 끝마치거든 고핫의 아들들이 와서 그것을 나를지니라. 그러나 그들이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지니 그들이 죽을까 염려하노라. 회중의 성막에 있는 이것들이 고핫의 아들들이 나를 짐이니라)

 

(pole)를 궤의 고리에 꿰어서

 

(25:14 그 막대들을 궤의 양쪽 옆면의 고리들에 끼워 그것들로 궤를 나르게 하며)

 

운반하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이 하나님이 매우 엄하게 법궤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웃사가 그것을 만진 것은

그만큼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겼으며,

하나님을 가볍게 여겼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이처럼

구약 시대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함'을 침해하는 자를 향하여

급속한 진노를 발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은혜를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선 그 모든 진노가 영원히 유보된 것이다.

 

(5:8-9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해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

 

그러니 이 같은 영생의 축복을 얻은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진정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