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거듭난 삶 2022. 10. 2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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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탄식과 하나님의 위로 2

 

성 경: [15:16-21]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19)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 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속하리라.

 

 

[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지면 기꺼이 받아들였다.

에스겔도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여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하였다(2:8-3:3).

 

예레미야나 에스겔은

공히 처음에는 입에 맞지 않는 것 같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예레미야는'기쁨''마음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였고

에스겔은 '꿀처럼 달게' 받아들였다.

 

또한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란 말은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12:5)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곳'(12:11)이란

어구와 같은 맥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다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천명이다.

 

 

 

[15: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 원문상의 직역은

'흥겹게 떠드는 사람들과 한 자리에 앉지 않았으며'이다(J. Bright).

 

예레미야는 그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평범한 것도 누릴 수가 없었다.

 

본절에서는 그의 사명에 대한

이 같은 헌신적인 성실성이 상세히 지적되고 있다(Thompson).

 

 

 

[15: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시내 같으시리이까 여기에는

박해받는 중에 있는 하나님의 종이 터뜨리는 애절한 탄식이 언급되어 있다.

 

이 질문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토로하는 울부짖음이 들어 있다.

 

* 참조 : (22:1 (아엘렛 샤할에 맞추어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돕는 일로부터 또 나의 울부짖는 말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나이까?).

 

예레미야에게는 그의 고통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며

그의 상처는 절망적이어서 도저히 치유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참기 어려운 고난으로 인해 '생수의 근원'되시는 여호와께서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으니 곧 그들이 생수의 샘인 나를 버렸고 또 스스로 물 저장고들 즉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저장고들을 팠느니라)

 

마치 '물이 말라 속이는 시내'인 것같이 여겨졌던 것이다.

 

'속이는 시내'란 여름철에는 말라버려 물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시내를 말한다.

 

팔레스틴 지방에는 많은 비가 왔을 때만 물이 흘렀던

수많은 와디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이해하기 쉬운 예화였을 것이다.

여행자들은 물을 찾기 위해 종종 와디에 다가가지만 대부분 물을 찾지 못하고 만다.

 

 

 

[15:19]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 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 앞에 세울것이며 - 클라크(Clarke)는 본 문구를,

 

'만일 네가 회개하면 다시 유다 땅으로 돌려 보내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레미야의 선지자 직분에 관련된 내용으로 봄이 더 나을 것 같다.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들을 향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불러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문구는

 

'네가 돌아오면 나는 너에게 선지자의 직무를 돌려주겠다'란 의미로

볼 수 있겠다(Feinberg,Thompson).

 

여기서도 '돌아오다'(슈브)란 동사의 언어 유희가 쓰이고 있다.

 

예레미야의 쓰라린 경험은 선지자로서의 그의 입을 거의 봉해 버렸으며

자기를 보낸 이에 대한 확신과 신적 소명에 거의 눈을 감아버리게 했다.

 

* 참조 : (20:7-9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속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날마다 조롱을 받고 사람마다 나를 비웃나이다.

8) 주의 말씀이 날마다 내게 치욕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었으므로 내가 말을 시작한 이후로 부르짖되 폭력과 노략에 대해 부르짖었나이다.

9)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그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아니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내 뼈 속에 사무치니 내가 참기에 지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도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백성들의 반응에 개의치 말고

다시 돌아와서 오직 당신만 신뢰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의 불평을 비난하면서도

우선 천한 것에서부터 귀한 것을 취할 것을 권면하신다.

 

즉 백성들의 속이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로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그에게로 돌아서라고 만든다.

 

그렇게 할 경우 그는 하나님의 입같이 될 것이며,

 

(4:16 그가 백성을 향해 네 대변인이 되리니 그가 곧 그가 참으로 네게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리라)

 

그의 말은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으로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 역시 그 말씀을 그러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5: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구하여 건짐이니라 -

 

'네가 나에게 충실한 이상, 그 어느 누구도 너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Clarke).

 

이것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다시 부르시는 재확인 절차이다(Nicholson).

이 내용의 어투는 1:8, 18, 19의 내용을 강하게 상기시켜 준다.

 

(1:8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건져 내리니 그들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라. 주가 말하노라, 하시고,

 

18-19 보라, 내가 이 날 너를 방벽을 세운 도시,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여 그 온 땅과 유다의 왕들과 그것의 통치자들과 그것의 제사장들과 그 땅의 백성을 치게 하였노라.

19) 그들이 너와 싸우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건져 내리라. 주가 말하노라)

 

본절의 약속은 구약에서 구원과 관련해서 흔히 등장하는 세 동사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것은 본절의

'구하다'(야솨), '건지다'(나찰)와 다음 절의 '구속하다'(파다)이다,

 

이 동사들은 모두 출애굽 사건을 묘사하는 상당히 비중있는 구절들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때때로 보다 일반적인 상황에도 적용되었다.

 

이들 각 동사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해 제각기 다른 면을 강조하고 있다.

 

'구하다'에 해당하는 '야솨'와 그 관련 명사들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압제받고 있는 자들은을 구해낸다는 점에 강조점이 두어졌다.

 

그리고 '건지다'에 해당하는 '나찰'

강한 자가 자기 먹이를 빼앗아 가려고 할 때

그것을 와락 붙잡는 자의 적극적인 행위를 나타내며,

 

본절에서는 특히 죽음, 무덤, 죄악, 고통, 공포 등으로부터 건짐받는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동사인 '파다'

대부분 어떤 사람의 소유에서 속전을 지불하고 그를 해방시켜 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Thompson).

 

 

 

[15: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속하리라.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 이 악한 백성의 손아귀에서 건져내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 '갈대아 군대의 손에서'의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것도 땅에 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취되었다(Clar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