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제4장 믿음의 부족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

거듭난 삶 2023. 9. 19. 00:17
728x90

4장 믿음의 부족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

 

우리는 기도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기심 때문이라는 점도 살펴봤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나

다른 형제자매들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에서는

 

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그것을 너희의 정욕에 쓰려고

잘못구하기때문이라.”(4: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로 하는 기도는 결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에 응답해주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뜻에

동의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는 오늘 믿음의 부족으로 인해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는기도가 믿음의 부족으로 인해 응답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것을 우리는 의심하면서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는 믿음의 기도가 아니라 불신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믿음의 기도가 아닙니다.

이러한 기도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자신들의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을 많이 봤습니다.

 

자신들이 죽으면 하늘나라로 데려가 달라고 구하는 기독교인들도 많이 봤습니다.

이러한 기도가 보여주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러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이제 신약성경에 나온 사도 바울의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기도란 무엇인지 공부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3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환난들로 인해 너희는 낙심하지 말라.

그것은 너희의 영광이니라. 이런 까닭에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곧 하늘과 땅에 있는 온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 분께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분께서 자신의영광의 풍성함에 따라 자신의 영을 통해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됨을 너희에게 허락하시며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고 또 너희가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 모든 성도들과 함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능히 깨닫고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

이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3:13-21)

 

이 본문을 통해 다시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도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온 기도에는 단 한번도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단 한 마디도 자신을 위해 구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달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온 기도 중에는 어린아이가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달라고 조르는 것 같은 기도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온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온 기도 중 그 어느 것도

이 세상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시고 제자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앞으로 미래에는 전 세계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미리 말씀하신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미래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세계를 통치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오지 않게 해 주시고 짐승의 표 같은 것도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그것을 찾는 자가 적으니라.”(7:13-14)고 말씀 하셨다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넓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온 모든 기도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에베소서 3:12을 보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은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낙심한 사람은 건전한 생각을 할 수 없으며 적절하게 행동할 수도 없습니다.

 

낙심한 사람은 제대로 설 수도 없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믿는 사람들은 핍박으로 인해 낙심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으로 인해 낙심했습니다.

자신들이 처한 처참한 상황으로 인해 낙심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낙심하여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두려움과 문제와 불확실과 낙심 가운데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아버지께 그들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 교회에는 이 세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낙심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낙심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세상에서의 유혹으로 인해 쓰러진 지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세상 교육과 정치와 마귀와 이단과 거짓 종교로 인해

낙심하고 넘어진 지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가 낙심하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기도할 때 가지고 있던 생각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에 있던 성도들은 당시 정치적인 상황을 지켜보면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권세를 보면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 종교의 핍박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도할 때 가지고 있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8절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성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 선포하게 하고

 

사도 바울은 무엇을 보고 있었습니까?

 

그는 주식시장을 보고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통장 잔고를 보고 있던게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그는 유엔이나 군대를 보고 있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떠한 환경에서도 낙심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마음과 생각이

바른 것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9절을보겠습니다.

 

또 예수그리스도에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감추어져 온 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려 하심이라.

그 목적은 그분께서 이제 교회를 사용하사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정사들과 권능 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곧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믿음을 통해 담대함을 가지며

또 확신 있게 나아감을 얻느니라.”(9-12)

 

사도 바울이 구했던 것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을 모든 사람

들이 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광대한 지혜를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을 구했습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을 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치 문제나 경제 문제나 사회 문제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 세상에서 바로 서서 복음을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바른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정치적인 상황이나 경제적인 상황이나 교육 문제나 국방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영광이 교회를 통해 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