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거듭난 삶 2023. 11. 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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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에서 전도하는 사울

 

성 경: [9:20-25]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즉시로 각 회당(會堂)에서 - 사울의 첫 복음 전파의 장소가 회당으로 소개되어 2절에 언급된 회당과 대조되고 있다. 즉 사울이 기독교인을 핍박하기 위해 방문하기로 되어있는 장소였던 회당이 복음을 전파하는 장소로 뒤바뀜으로써 그의 회심이 극적으로 강조되었다.

 

한편 '각 회당'이란 표현은 사울의 설교가 여러 회당에 걸쳐 계속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로 보아 사울이 큰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이가 예수이심을 확신했기에 그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을 서로 연관 지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예수를 따라 다녔던 자가 아니었기에 자기가 만난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을 연관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는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을 신학적으로 깊게 연결한 혼적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9: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듣는 사람이 다 놀라 - 여기서 누가는 사울의 설교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을 언급하면서 사울의 과거를 언급함으로 사울의 회심을 강조하고 있다. 본 구절에 언급된 청중은 회당에 모인 비기독교적 유대인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을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고 칭하여 그들이 제 삼자적 입장에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중들의 놀람은 사울의 회심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반응, 즉 사울에 대한 반감이라고 볼 수 있다(Haenchen). 특히 23절의 언급은 유대인들이 사울을 배교자, 배신자로 여겼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 본 구절은 청중들의 반감에 상응(相應)하여 표현된 반응으로서 청중들의 반감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 기세를 높여 증거하는 사울을 부각시킨다.

 

뿐만 아니라 누가는 영적인 힘이 증가되고 점점 담대해지는 사울의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證明)하여 본 절에서의 설교는 20절에서의 설교와 표현만 다를 뿐 그 내용은 같다. 이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것이 사울의 일관된 메시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한편 여기서 언급된 '증명하다'는 본래 '연결시키다'는 뜻과 함께 '논증하다', '가르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사울의 설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여러가지의 자료들을 모아 논증적으로 예수의 그리스도 됨을 가르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케오''혼란케하다', '섞다'의 뜻을 지니므로 사울의 설교 내용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혼란에 빠져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갑작스런 사울의 회심과 그의 설교 내용은 유대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다음절에 언급되는 유대인들의 음모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다.

 

 

 

[9: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여러 날이 지나매 - 이 표현은 사울의 선교가 시작된 후 유대인들의 살인 공모가 있게 된 시점까지 상당한 시간의 경과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은 사울의 지속적으로 예수를 전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사울을 죽이려 했을 것이다.

 

 

 

[9: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 고후 11:32에 의하면 '아레다 왕의 방백'이 성을 지킨 것으로 사울은 언급했다.

 

(고후 11: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당시 다메섹에는 유브라데스 강에서 홍해까지 뻗쳐있는 나바티안 아랍 왕국이 있었으며 이곳의 통치자는 아레다 4(B.C. 9-A.D. 40)였다.

 

유대인들이 나바티안 족의 방백을 매수해서 사울을 잡고자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사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은 과격한 것이었다.

 

 

 

[9: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그의 제자들이 - 누가는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사울을 탈출시키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그의 제자들'이란 호칭을 사용한다.

 

여기서는 문맥상 '사울의 제자들'이라는 말로 해석되어야 한다.

 

한편 이들에 대해서 다음 세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이들은 사울이 다메섹으로 갈 때 예루살렘에서부터 따라간 동행인이었을 것이다.

(2) 다메섹에서 행한 사울의 설교에 감동되어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유대인들일 것이다.

(3) 이전부터 있었던 기독교인들로 사울을 따르며 그를 도왔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2)의 견해가 가장 적절하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상당 기간 전도 활동을 했으므로 그곳에 상당한 추종자들이 있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광주리 - 이 말의 헬라어 '스퓌리스'는 예수가 4,000명을 먹이신 기적 때 언급되었던 것과 동일한 단어이다.

 

(15: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8: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그러나 사울이 고후11:33에서 직접 언급할 때에는 본문에서 언급한 갈대 광주리와 구별되는 끈으로 만든 바구니 '사르가네'가 언급되었다.

 

사람을 달아 내리는 데는 사울이 직접 언급한 '사르가네'가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지만 '스퓌리스''사르가네'가 본절과 고후 11:33에서 구별없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고후 11:33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아무튼 광주리에 담겨져 탈출한 것은 그 당시의 위기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회심으로 인해 겪게 되는 사울의 첫 번째 수난이라는 점에서 16절에서 예수가 아나니아에게 예언한 그의 고난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16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