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연매출 100억 원 농사꾼 류근모

거듭난 삶 2010. 8. 1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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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매출 100억 원 농사꾼 류근모 장안농장 대표

  • 김민희 TOP CLASS 기자

입력 : 2010.08.15

쌈 채소가 제 작품입니다

<이 기사는 톱클래스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어제와 그제 내내
  심하게 내린 비와
  천둥 번개로 인하여
  내내 걱정하고 맘 졸이던
  참으로 긴 여름밤입니다.
 
  사납게 내리던 그 비가
  각 농장으로 쏟아질 거란 생각에
  작물들 걱정하며
  긴 밤을 새웠습니다.
 
  날이 밝기도 전에
  장화를 꺼내 신고
  장갑을 끼고 삽을 꺼내 들고
  전쟁터에 임하는
  농군의 모습입니다.
  … (하략) ”
 
  - 2010. 7. 1. 귀농일기 중에서
 
 
  ‘상추 CEO’로 알려진 류근모 대표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그의 귀농일기 때문이었다. 직접 찍은 쌈 채소 사진과 함께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귀농일기에는 도시를 떠나 자연에 귀의한 농부가 보여줄 수 있는 표정 그 이상을 담고 있었다. 쌈 채소 사진에서는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쌈 채소는 표정이 살아 있다. 귀농일기에는 굴곡진 삶의 고비를 넘긴 자의 혜안과 관조가 묻어난다. 귀농 13년째, 초심이 흔들릴 법도 하지만 아니다. 간밤에 세찬 비나 된서리가 내리기라도 하면 전전반측하며 잠을 설치다 어김없이 해 뜨기 전에 밭으로 나가고, 소비자 불만이 접수되면 즉각 ‘통렬히 반성합니다’라는 제하의 귀농일기를 올린다.
 
  충북 충주시 신니면, 나지막한 야산들로 둘러싸인 장안농장. 약 400만㎡(120만 평)에 달하는 대지에는 총 6개의 농장 외에도 ‘유기농’을 테마로 한 공간이 이어져 있다. 유기농 상추・양배추・배추・당근・감자・호박・오이・무・파・양파 등 각종 야채는 물론 유기농 허브차・벼 등도 자란다. 400여 개의 장독에서는 살구・감・사과 등 유기농 과일로 담근 식초가 익어간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유기농 야채를 먹고 자라는 가축들의 축사도 있다.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토끼 축사에서는 형형색색의 토끼 100여 마리가, 소 축사에서는 튼실한 소 22마리가 자라고 있다. 뿐만 아니다. ‘쌈 채소 박물관’ ‘쌈 채소 공원’을 조성했고, 매년 5월엔 ‘쌈 축제’를 열어 이웃과 친구들, 단골 회원들을 초청해 쌈 채소를 따고 나눠 먹는 행사를 갖는다.
 
  장안농장은 유기농 상추 재배로 시작해 100억원대 매출을 달성, 유기농업계의 신화가 됐다.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만 100개가 넘는다. 국내 유기농 최초 ISO 9001:2000 인증 획득, 국내 최초 쌈 채소 부문 해외 HACCP 인증 획득, 국내 최초 IFOAM 국제인증(글로벌 유기농) 획득, 국내 최초 우체국 주문판매, 국내 최초 친환경 쇼핑몰 개설, 국내 최초 유기농업 연구소 개설…. 장안농장에서 재배한 야채는 전국의 이마트에 공급되는데, 56개 점은 장안농장이 직영한다. 상추로 대표되는 장안농장의 쌈 채소는 아삭거리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강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독서가 나를 키운 힘
 
  ‘상추를 닮은’ 류근모 대표는 장안농장의 얼굴이다. 한 대형마트에서는 그의 얼굴을 내세워 유기농 채소를 지면 광고한다. 개성 있는 외모와 재치 넘치는 말솜씨, 다독(多讀)으로 다져진 박식함과 역경을 딛고 성공한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까지 갖춘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른바 ‘스타 농부’다. 대한민국 신지식인 선정, 대산농촌문화대상 수상, 대한민국 친환경 농업대상 등의 상을 수상했고, 농업대학, 농업기술센터, 각 대학 ceo 과정 수강생, 외국인 농업인 등을 포함해 20여만 명의 농업관련단체 종사자와 가족 단위 방문객이 장안농장을 다녀갔다.
 
  “가수 중에 누구 좋아하세요?”
 
  본사 회의실로 기자를 안내한 류 대표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회의실 양쪽으로 수천 장의 LP판이 진열돼 있었다. 기자가 말한 가수의 LP판이 없자, 그는 ‘눈물 젖은 뱃사공’을 틀었다.
 
  “이 노래를 얼마나 많은 가수들이 불렀는지 아세요? 누가 부르느냐, 어떤 오디오로 듣느냐, 어떤 분위기에서 누구와 듣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죠.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어떤 땅에 어떤 정성과 사랑을 기울여 짓느냐에 따라 작황이 완전히 달라져요.”
 

  류근모 대표가 만든 공간은 어느 곳 하나 평범하지 않다. 회의실에는 10여 종의 커피믹스와 각종 차, 스무 가지가 넘는 사탕이 가득 담겨 있다. ‘늘시원’이라는 간판이 붙은 화장실에는 최신식 비데가 설치돼 있고, 경제 주간지가 비치돼 있다. 사장실에는 이삿짐을 덜 푼 짐처럼 책들이 삐뚤빼뚤 쌓여 있는데, 사장실 책꽂이를 식당으로 옮겨 사원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었다 한다.
 
  그는 한 달 평균 스무 권의 책을 읽는다. 그날 사장실 테이블에는 《일본 소도시 여행》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달러가 사라진 세계》 《CEO 켄지》 등의 책이 놓여 있었다. 그는 “사장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책을 정말 많이 읽어요. 공부하면 상추가 더 빨리 자라요”라며 사람 좋게 웃는다.
 
  류근모 대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3년 전, 그는 신용불량자였고,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 조경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 그는 ‘이번에도 실패하면 끝’이라는 절박한 심경으로 귀농했다. 그는 농업에 뛰어들기 전 세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초기 자본이 적어야 한다. 둘째, 수확 기간이 짧아야 한다. 셋째, 자금 회전이 빨라야 한다.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채소였다. 그때부터 그의 채소 공부가 시작됐다.
 
  그가 유기농 업계의 신화를 만들어온 과정은 ‘편견과의 싸움’이었다. 농약을 치지 않고 상추 재배를 시작했을 때, 이웃 주민들은 “상추가 아니라 잡초를 키운다”며 쑤군댔다. 그가 아이디어를 내면 주위 사람들은 “그게 가능해?”라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브로콜리의 표준화, 택배를 통한 채소 판매 등이 모두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도전정신으로 이룬 결실이다. 그의 다음 목표는 ‘1만 원만 내면 유기농 야채를 실컷 먹을 수 있는 유기농 식당’을 여는 것. “그게 가능해요?”라고 기자가 묻자, 그는 “난 늘 안 된다는 얘기만 들어왔지, 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없어요”라며 또 싱글싱글 웃는다.
 

  그는 지난 13년 동안 하루 5시간 이상 잔 적이 거의 없고, 휴가 한 번 다녀온 적 없다고 한다. 함께 회사를 꾸려가는 아내와 해외여행 한 번 못 갔다. 한 달 평균 주행거리가 1만2000km. 트럭・트랙터・경운기 운전에서 잡초 뽑기까지 직원이 하는 일이라면 A부터 Z까지 몸 사리지 않고 직접 다 한다.
 
  “정말 미친 듯이 일만 했어요. 그런데 농사가 진짜 재미있어요. 제 명함에 ‘예술총감독’이라고 돼있죠? 농사는 예술이에요. 그것도 살아 숨 쉬는 예술이에요. 저는 예술감독이고, 얘네(쌈 채소)들은 작품이에요. 보세요. 아름답죠? 흐흐흐. 원래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20대까지 미친 듯이 시를 썼어요. 난 뭐 하나에 미치면 푹 빠지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난 문재(文才)가 없구나’라는 걸 깨닫고 그만뒀죠.”
 
  시를 포기한 후 택한 전공은 기계설계. 시적인 감수성과 기계설계의 정교함, 조경을 통해 배운 자연미 등이 그의 농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류근모식 농사’가 탄생한 셈이다. 공부하는 CEO인 그는 사원 재교육에도 열심이다. 사내에 ‘장안대학’을 만들어 매주 전문가 초청 강연을 열고, 5년 이상 근무한 사원 중 우수 사원은 해외 연수를 보내준다.
 
  “저더러 성공했다고들 하는데, 저는 성공이 뭔지 모르겠어요. 다만 늘 책을 많이 읽어왔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이 방문하시는데, 그분들한테 제가 그래요. 오늘 중으로 1만 원을 빌릴 수 있으면 어려운 게 아니라고. 정말 어려워지니까 돈 만원 빌릴 데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때도 꿈을 버리지 않았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거든요. 그때에도 책을 많이 봤어요. 서점에 가면 공짜로 볼 수 있잖아요(웃음). 준비하고 있으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와요.”
 
  그래서 그는 직원 채용을 할 때 반드시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고 한다. 그에게 생에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을 물었다. 또다시 의외의 답이, 하지만 그다운 답이 돌아왔다.
 
  “좋은 시 한 편 남기는 것, 그리고 삼국지를 평역해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