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거듭난 삶 2024. 3. 7. 00:24
728x90

유대인에게 변증하는 바울

[로마에 도착한 바울]

 

성 경: [28:16-22]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20)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로마에 들어가니 - 드디어 바울이 로마에 당도했다.

 

오래된 서방 사본에는 "백부장이 죄수들을 시위 대장에게 넘겨주었"다는 문구가 첨가되어 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항소를 하였으므로

 

(25: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

 

황제 휘하의 부대 책임자에게 넘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 누가는 중간 과정에 대한 자세한 언급 없이 바울이 한 군사에 의해 따로 감시를 받게 되었다는 결과만을 언급하고 있다.

 

몸센(Mommsen)에 의하면 군인에 의해 따로 감시받게 한 것은 감옥에 감금시키는 것보다 가벼운 형벌이었다.

 

아마 거기에는 베스도의 긍정적인 조서

 

(25:25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저가 황제에게 호소한 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

 

26: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그리고 호송 책임자였던 율리오가 바울에 대해 경험한 대로 작성한 긍정적인 보고서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로마법에 의해 군인의 한 손과 바울의 한 손이 사슬에 묶인 상태였는지 아니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사람들을 초청하여 대화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자유가 허용된 것은 사실이다.

 

(17-23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20)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8: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 되었으니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 중 지도자급 되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하나의 통합된 공동체 기구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보며, 따라서 바울이 초청한 이들은 개별적 공동체들의 장로, 지도자, 회당장과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본다(Wendt).

 

유대인들이 로마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마카비 시대(B.C. 166-63)부터 였고, B.C.63년에는 폼페이가 유대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후 많은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오기도 했기 때문에 로마에는 제법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실례로 B.C. 6년 유대인들이 헤롯 아켈라오의 폭정을 로마에 고소하기 위하여 50명의 대표를 파견 하였을 때 그곳에 거주하던 유대인이 무려 8,000명이나 동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Josephus. Anitp. xii. 1).

 

바울이 유대인 지도자들을 자기의 숙소에 초청한 것은, 그가 죄수의 신분으로서 활동 공간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고,

 

그들을 초청한 목적은 대략 다음의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1) 자신을 변호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바울은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예루살렘의 유대인들로부터는 자기에 대해 어떤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 거기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자신을 변호할 수 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바울에 대해 부정적인 소문을 듣고 그것을 사실로 판단하여 황실(皇室)에 뇌물을 주면서 부정적인 내용의 고소를 한다면 바울로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2)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바울 자신으로서는 개인의 일신상의 안전을 염려하는 것보다는 무엇보다도 복음을 중거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 전파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 바울은 정중한 태도로 자신이 로마에 재판을 받기 위해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그는 자기가 동족인 유대인을 거스리거나 유대의 관습을 반대한 일이 없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오해의 여지를 없게 하였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기에게 허위의 누명을 씌워 사형(死刑)을 가하려 했으나 로마 군사들이 구해준 일(21: 32, 33)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21:32-33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다만 무죄하게 로마인의 손에 넘겨졌다고만 진술함으로써 가능한 한 반유대 감정을 배제하고 있다.

 

 

 

[28: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

 

로마인이라 함은 천부장 루시아의 총독 벨릭스 및 베스도를 가리키며 그들은 모두 바울의 무죄를 알고 있었다.

 

(23:29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24:22-26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그러나 이들이 바울을 석방하고자 했다는 것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의 무죄를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적극적으로 바울을 놓아주고자 한 일이 없고 베스도 같은 경우에는 도리어 바울을 유대인들에게 내어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25: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그렇다고 해서 바울의 진술이 결코 허위는 아니다. 다만 바울이 말하려 했던 것은, 자기가 지금 재판을 받기위해 로마에 이송되어 온 것이 궁극적으로 유대인들의 적대감 내지는 오해 때문이었다는 것,

 

즉 유대인들이 원인 제공자라는 것과 거기에 비해 로마인들은 부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편 로마인들은 바울을 놓아주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방해했기 때문에 석방되지 못하였다는 것은 예수의 모형을 염두에 두고 그것과 바울의 유사성을 보여줌으로써 바울의 사도성을 부각시키려는 누가의 신학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참조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28: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다 - 본절에서도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이 유대인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적대의식 때문에 불가피하게 가이사에게 상소(上訴)하기는 했지만, 조금도 동족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바울의 고백이 그것을 말해준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반대하여 그로하여금 가이사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지만 바울이 자신을 살해하려한 동족을 송사할 의사가 없다고 한 것은 예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한 동족을 용서하신 사실을 연상시킨다.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28:20]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이것은 공의회에서도

 

(23: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벨릭스 앞에서도

 

(24: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증언했던 내용이다.

 

(26: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여기서 '이스라엘의 소망'이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이다.

 

바울은 이 소망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성되었다고 하였으나 정치적이며 현세적 메시야를 기다렸던 일반 유대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차이 때문에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던 것이다.

 

 

 

[28:21]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 본래적 의미는 그려지거나 씌어진어떤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산헤드린에서 발송한 바울에 대한 공식 고소장을 가리킨다고 본다.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 앞에서는 문서를 통한 연락이 없었음을 말했고 여기서는 사람을 통한 정보의 전달도 없었음을 밝히고 있다.

 

본문에서 '고하든지 '는 공식적인 알림을 뜻하고 '이야기한'은 사적인 알림을 나타낸다.

 

결국 유대인 지도자들의 말은, 공식적인 문서를 통해서나 혹은 공식적인 임무를 띠고 온 사람을 통해서나 도무지 바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는 것이고, 또한 여행객을 통해 사적으로도 들은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말대로 하자면 바울은 그들에게 베일에 싸인 인물인 셈이다.

만약 이들이 실제로 바울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면 그것은 아마 다음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1) 예루살렘의 반()바울적 유대 주의자들은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를 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고 그래서 로마에 미리 연락하지 못했다(Meyer).

 

(2) 연락을 하려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바울의 이송이 거의 마지막 항해 시기였기 때문에 교통원의 어려움이 있었다(Alford, Lumby).

 

(3)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령 이후 다시 로마에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멀리 본국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가까운 지역에 흩어져 있다가 돌아오는 것이었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바울 사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Olshausen, Hervey).

 

이 가운데 첫 번째 견해는 타당성이 희박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반()바울적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이 항소할 때 현장에 있었으므로

 

(25: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

 

그때에라도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공문을 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견해가 타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혹자는 로마의 유대 공동체 지도자들이 바울에 대해 아는 바도 들은 바도 없다고 한 것은 단지 외교적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로마의 유대인들이 바울과 유대인들 사이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견해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와 동방 간에는 정규적인 왕래가 있었고, 바울이 연루된 문제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초미의 관심사인 종교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그런 소문은 당연히 로마까지 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모른다고 한 것은, 아무런 유죄 증거가 없는 바울의 상소건에 대하여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자기들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Bruce).

 

종교적인 문제로 분란을 일으켜 로마로부터의 추방령을 받았던 쓰라린 경험(18:2)을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28: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기독교가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단 그들이 기독교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본문에서 ''(하이레시스)'이단'으로도 번역되며

 

(24: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에 의거하여 기독교가 로마의 유대인들에 의해 이단시 되었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학자도 있으나(Bronhauser),

 

본문에서 보여진 유대인들의 태도는 그렇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들은 바울에게 기독교에 대하여 '듣고자' 했다.

만약 그들이 기독교를 이단이라고 여겼다면 바울에게서 무엇을 듣고자 했을리가 없다.

 

또한 '하이레시스'의 보편적 의미는 '이단'이 아니라 '종파'라는 점에서 이 단어를 반드시 '이단'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아마 로마의 유대인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고 다만 유대교의 많은 종파 가운데 하나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