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거듭난 삶 2024. 3. 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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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강론

[로마에 도착한 바울]

 

성 경: [28:23-27]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 본문의 상황은 22절에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22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먼저 왔던 사람들이 바울에게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껴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왔는지

 

(17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 되었으니)

 

 

아니면 처음 만났을 때는 상견례(相見禮)만 하고 날짜를 따로 정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하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많다.

 

하여튼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숙소에 모여왔고, 이렇게 하여 바울은 로마의 유대인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혹자는 바울의 숙소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처음부터 많았거니와 점차 더욱 늘어났을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상당히 넓은 집을 얻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Zahn).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하나님 나라와 예수로 요약하며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핵심적이고 정확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복음 선포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이다.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이며 그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현현되었고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확증되었으며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것이 기독교의 선포이기 때문이다.

 

본절에서 바울이 먼저 증거한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지상 사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당연히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었다.

 

(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이 기대해 왔던 유대 민족주의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통해 보여진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이었다.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다음으로 바울이 증거한 것은 예수에 관한 것이었다.

구약의 메시야 예언과 약속이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기독교적 메시야관은 유대인들에게 낮선 것이었고 이해하기도 힘든 것이었으므로 그는 단지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해시켜 설득하려 하고 있다.

 

 

 

[28: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행한 바울의 증언은 노력에 비해 충분한 것은 아니었지만 몇 사람의 믿는 사람을 얻었다.

 

대체로 학자들은 이때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본다.(26, 27).

 

유대인 동족(同族)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믿음을 갖게 하려는 바울의 노력이 극히 부분적으로만 성공을 거두었던 경우는 본서에 여러 차례 기록된 바이며

 

(14:4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17: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그것에 대해서 바울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도 않았고 동족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9-11).

 

 

 

[28: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 -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로마의 유대인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고, 마침내는 집회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하고 흩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23:10에 있었던 유대인들 사이의 분쟁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23: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 6;9-10의 인용으로,

 

(6;9-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이곳 외에도 신약에서 무려 여섯 번이나 인용된 말씀이다.

 

(13:14-15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4: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8:10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본래 사 6:9-10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6:9-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바울은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의 본래적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예언이었기 때문이다.

 

 

 

[28:26-27]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

 

70인 역의 사 6:9,10과 내용이 일치하는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6:9-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본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실 때 그가 어떠한 말을 하여도 백성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것이었다.

 

결국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하여 이사야의 말을 청종(聽從)치 아니함으로써 마침내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것으로 성취되었다.

 

이제 바울은 그 말씀을 이사야 시대 백성의 후손들에게 적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과 그에 따른 심판을 말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이 구원의 복음을(24) 거부하였기 때문에,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그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바 있듯이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유대인들도 구원에 참여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1:1-12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